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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다짐

두 번째 다짐     


        

  6년 전쯤 키우던 풍산개와 리트리버를 시골로 떠나보냈다. 혼자 큰 개 두 마리를 키우기가 감당이 안됐다. 풍산개는 주인에게만 충성하는 성격이라지만 힘이 너무 세서 내 힘으론 산책을 시킬 수도 없었다. 보내고 나서도 직접 아는 집이 아니라서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론 다시는 개를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제 작년쯤 미국서 공부하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기가 키우던 개 한 마리를 데려왔다 애지중지 각종 검사를 하고 예방주사를 맞히고 비행기를 태워서.

  세퍼트와 롯드 와일러의 혼혈인 그 놈의 이름은 포를란. 외우기도 힘들었다. 남미인가 어느 나라 축구 선수이름이란다. ‘씩씩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생각으로 아들이 지은 이름이었다. 이름처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더니 덩치가 너무 커져버렸다. 덩치만큼 목소리도 우렁찼다. 성격은 순한 편이었지만 커다랗고 시커먼 개를 보면 사람들은 보면 깜짝 놀라고 무서워했다.

  미국서는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잘 살던 놈이 서울에 와서는 마당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놀아줄 사람도 없이 뒷마당서 멍하니 있는 녀석이 불쌍해서 양평에 사는 지인 댁에서 잡종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너무 예쁜 새끼를 보고 충동구매 하듯이 이성을 잃고, 포를란도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핑계로 냉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작은 애는 ‘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둘 다 수놈이라 매일 장난인지 싸움인지 모를 씨름을 하다가 달이는 항상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혼자보단 덜 외로울 거라는 사람의 기준으로 두 마리를 키웠다. 

  같은 빌라에서도 종종 포를란 때문에 시끄럽다는 불평들이 있었지만 개를 사랑하는 5층 아줌마의 지원 사격으로 무사히 넘어가곤 했다. 관리 아저씨들도 집을 지키기도 한다며 거들어 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메르스가 유행하면서부터 동네 사람들이 개 짓는 소리뿐 아니라 위생상의 문제에도 예민해졌다. 여름이 다가오니 배설물 냄새도 심해지고 병균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옆 집, 뒷 집에서 소음과 위생 등을 문제 삼아 구청에 민원을 넣기로 했다는 것이다. 관리 아저씨도 난감해져서 아들에게 사정을 했다. 더 이상 거들어 주기가 힘들다고.

  아들도 포기하고 잘 키워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서울 근교에 사는 친구들에게도 부탁하고 여기 저기 소문을 냈다. 다행히 이천에 사는 분이 두 마리를 다 맡아 주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며칠 전 그 분은 트럭을 가지고 개를 데리러 오셨다. 부부가 모두 개를 좋아하는 분들이셨다. 

  큰 개 두 마리를 트럭 위로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른 네 명이 땀을 흘리고 온 힘을 다해서 들어 올렸다. 운행도중 사고가 날까봐 트럭 뒤에 목줄을 단단히 묶고 안전하게 그물망을 덮어 출발했다. 개들도 금새 포기를 했는지 편안히 앉아 있었다. 떠나가는 차를 한참 쳐다보았다. 섭섭함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들이 키우는 개라고 나는 모른척했다. 먹이를 주는 것도 청소를 하는 것도 모두 아들 몫이었다. 내가 손을 대기 시작하면 나한테 다 미루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안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출발한지 두 시간쯤 지나 아주머니한테서 포를란이 물을 먹고 있는 사진과 함께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이천에 오면 보러 오라는 말도 함께.

  시골이 더 편할 것이 라는 기대와 우리보다 잘 키우리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나마 두 마리가 이산가족 되지 않고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위로도 함께. 다시는 개를 키우지 말아야지 두 번째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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