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는 기한이 없다
2022년 여름,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계절은 가장 밝았는데, 내 안에서는 긴 밤이 시작됐다.
나는 그것을 ‘애도’라고 불렀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8개월 가까이 집 안에 머물렀다. 외출도, 약속도, 사람도 끊었다.
심리상담을 하는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울증 같다고, 약을 먹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를 허락했다.
억지로 기분을 끌어올리지도 않았고, 괜찮은 척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끝을 보고 싶다는 묘한 오기도 있었다.
바닥을 쳐야 올라올 수 있다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나는 결국 나를 끝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미한 신뢰도 있었다.
나는 원래 우울한 기질이 아니라고 자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데도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웃어지지 않았다.
사회적인 미소조차 불가능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나를 보며,
그제야 생각했다.
혹시 정말 우울증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얼어붙은 흙이 아주 조금씩 풀리듯 정신이 돌아왔다.
남은 생이 몇 년일지, 몇 십 년일지 모르는데
그 시간을 환자로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 동굴을 빠져나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친구가 단장으로 있는 합창단에 들어갔다.
매주 사람들 사이에 앉아 숨을 맞추고, 같은 가사를 발음하고,
한 음으로 겹쳐지는 경험이 약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 더.
코로나 동안 멈춰 두었던 플라멩코를 다시 시작했다.
발뒤꿈치로 바닥을 내리치며 리듬을 만들 때,
내 안에 고여 있던 어둠이 조금씩 깨졌다.
슬픔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슬픔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몸이 먼저 알기 시작했다.
노래와 춤은 나를 완전히 구해내지는 않았다.
대신, 살아 있는 쪽으로 한 발씩 옮기게 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