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도 기력이다

나는 아직 괜찮다




무기력도 기력이다


겨울은 핑계를 많이 만들어주는 계절이다.
추워서, 길이 얼어서, 발이 아파서.
족저근막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더 그럴듯해진다. 몸이 아프니 쉬어야 한다고, 쉬는 김에 조금 더 쉬어도 된다고. 그렇게 나는 겨울 내내 집 안에 머물렀다. 집은 안전했고, 따뜻했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뿐인데, 마음 한쪽이 축 처졌다. 무기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우울증일까, 괜히 스스로를 진단해보기도 했다. 평생 목표 없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늘 무엇인가를 배우고, 계획하고, 다음 문장을 궁리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멍하니 있어도 되는 걸까. 은퇴할 나이쯤 되었으니 놀아도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한편으로는 나태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3월이 왔다.
달력 한 장이 넘어가자 계절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툭 던지듯 말했다.


“무기력도 기력이다.”


그 말은 묘하게 따뜻했다.
무기력은 없는 힘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아직 쓰이지 않은 에너지가 잠들어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고갈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 있었던 것뿐이라고.


겨울 내내 집 안에 박혀 있었다는 사실도 다르게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발을 감싸 안고, 추위 속에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는지도. 기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력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


침대에서 기어나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렇게 한 줄을 쓰는 일도 사실은 기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기력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문장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라는 증거다.


몇 해 전 읽었던 김진영 교수의 《아침의 피아노》가 떠오른다. 그 책을 덮으며, 죽을 때까지 문장 한 줄이라도 생산적으로 살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체력이 약해지고 활동이 줄어들어도, 읽고 쓰는 일은 끝까지 붙잡고 싶다고. 그런데 요즘은 그 다짐마저 희미해졌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도 시들해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시들해진 것이 아니라, 조금 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무도 겨울에는 잎을 떨군다. 그렇다고 죽은 것은 아니다.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우기 위해 에너지를 안쪽으로 모으고 있었을 뿐이다.


무기력도 기력이다.
나는 요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도 힘이다. 방향을 찾으려는 힘,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힘. 그 힘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불안조차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처럼 하고 싶은 것이 넘치지 않아도 괜찮다. 배우고 싶은 목록이 길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은 다만 숨을 고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잘 노는 것도, 잘 쉬는 것도 능력이라면, 나는 이제 그 능력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예순이 넘었다.
그래도 되는 나이라고, 조금 느려도 되는 나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허락이었으면 좋겠다. 기력을 다 써버린 사람이 아니라, 기력을 아껴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이렇게 한 편을 썼다.
무기력하다고 말하던 사람이 쓴 글이다. 그렇다면 분명, 내 안에는 아직 힘이 있다. 방향만 바꾸면 될 힘. 봄이 오면 슬며시 고개를 드는 힘.


무기력도 기력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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