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계속되니 라디오에서 제철 음식으로 더위를 이겨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 여름에는 민어지.
엄마는 여름마다 커다란 민어를 사와서 직접 민어탕을 끓이셨다. 내가 결혼한 후에는 우리집으로 민어와 찌개거리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에는 꼭 민어를 먹어야 하는 줄 알았다. 작년 여름에도 아들과 함께 친정 엄마께 민어를 사다드렸다.
올해는 민어철이 되었는데 엄마가 안 계신다. 당연하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갑자기 훅 실감이 되는 순간이다. 또 눈물이 찔금 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두 달가량 지났는데도 아직 멍한 채로 스트레스 속에 있다. 내가 우울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이다. 마음이 쳐지고 몸도 쳐진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슬프고 그리워서 그 후로도 외롭고 힘들 때마다 산소에 찾아갔다. 혼자 아빠가 좋아하는 커피를 보온병에 가득 가져가서 산소에 뿌려주고 나도 마시고 돌아왔다. 공원묘지 앞에서 파는 원색과 형광색 꽃을 용납할 수 없어서 미리 꽃시장가서 예쁜 조화를 골라서 부케를 만들어 계절마다 바꾼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쉬움도 컸지만 아빠는 내게 버팀목이었고 항상 그리운 사람이다.
엄마는 아흔을 넘기고 돌아가셨으니 남들이 말하는 호상이다. 평생 엄마가 보고 싶은 적이 없었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 60에 고아가 됐다고 새삼스레 억울할 일도 아니라고.
그냥 슬퍼하면 될 것을, 그러면 더 편할 것을 내 안에서 그 슬픔을 거부하는 세포가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거부당했던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가슴에 막혀 있는 것 같다. 결국 내가 스스로 애정결핍이라고 부르짖게 만든 사람. 그런데 아무 때나 눈물이 흐르고 내가 왜 이러는지 혼란스러워졌다.
세상에 나를 낳아준 사람이 돌아가셨으니 그 감정은 순수하게 슬픔이어야 한다. 그런데 머리에서는 나는 엄마와 맞지 않았고, 엄마가 위로가 되어준 적도 없고, 엄마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계속 한다. 머리와 가슴이 충돌한다. 감정과 생각이 부딪쳐서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슬프지도 않고 아무 일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럴까를 받아들이기가 복잡하니 몸도 부대낀다.
그냥 슬프다고 하자.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프다고 하자. 너무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가려 발버둥치지도 말자. 정신 차리라고 나를 채찍질 하지도 말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일이겠지. 남은 평생 계속 슬픔이 가슴 한 구석에 남겠지만. 상실과 애도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부고를 알리지 않아서 문상을 못 온 친구들이 얼마나 슬프냐고 힘내라고 위로를 건낼 때마다 속으로 나는 별로 슬프지 않은데 괜찮은데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런데 겉은 멀쩡한 듯 보였는데 나는 괜찮지 않았나보다.
자꾸 마음을 다잡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두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