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가 살아있다고 정의하게 하는가.
아침부터 비가 오더니 진눈깨비가 되었다가 가끔 우박같은 얼음 알갱이가 떨어지기도 하고
저녁에는 완전히 눈이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오니 비도 아닌 눈도 아닌 무엇이 하늘에서 내리고 있다.
이어폰을 끼기가 싫다. 그냥 덕수궁 돌담길을 추적추적 걷는다.
생각을 하고 싶다.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지저분하고 눈도 침침하다.
실내에서는 조명을 켜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종일 어둡다.
이런 날 어울리는 연극인지도 모른다.
10년쯤 되었나. 2017년이니 7년전이다. 마일리스 드 케랑갈 작가의 소설로 읽었다.
줄거리도 충격적이지만 24시간, 딱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밀도있게 썼을까 신기했다.
오래전이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이었다. 같은 제목의 연극을 보았다.
연극이라는 것 보다 일인극이라는 것이 신기해서 예매를 했다.
주인공은 물론 환자로 누워 있지만 어렴풋한 기억에도 의사, 간호사, 부모, 친구들, 이식코디네이터 등등
몇 명인지 기억도 안나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배우 한명이 어떻게 한다는 거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대학교때부터 연극을 좋아해서 모노드라마도 많이 봤지만 좀 다르다.
시몽은 19살, 말 그대로 싱싱한 청춘 서퍼이다. 추운 날 새벽부터 친구 두명과 바다에 서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 사고가 난다.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안전 벨트를 했던 친구 둘은 골절만 당하고 목숨을 건진다.
시몽은 가운데 앉아서 안전벨트가 없었고, 사고가 나자 앞유리를 뚫고 날아가서 머리데 심한 부상을 당한다.
병원에 실려 왔을 때는 이미 뇌사 상태였다. 두어 시간 검사를 하고 의사는 뇌사 판정을 하고 부모에게도 통고한다. 장기 기증센터에 연락을 하고, 이식 코디네이터가 부모를 만난다. 장기 기증을 할 것인지 묻는다.
코디네이터는 장기 기증을 하기 위한 설득은 하지 않기로 한다. 완전히 부모에게 선택을 맡기고 당사자가 무었을 원한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몽이라면 어떤 션택을 원할까. 시몽은 신자 였는가, 관대한 사람이었는가. 장기기증을 거부하는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는가.
시몽의 부모는 처음에는 화를 내지만 결국 장기 기증을 하기로 결정한다. 조금이라도 의미없는 죽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면서 눈은 안되다고 부탁한다. 의사들은 심장, 신장, 간, 폐를 적출해서 맞는 대상에게 바로 이식한다.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24시간이다.
내가 본 것은 김신록 배우이다. 나중에 세어보니 열여섯명의 캐릭터를 혼자 연기한다. 무대에는 테이블 하나 뿐이다. 목소리 변화와 몸짓, 약간의 조명과 효과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과 인물들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한다. 시몽의 엄마 역할에는 같이 눈물이 나고, 때때로 웃음도 나고. 과한 액션도 없고 대사도 별로 없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많다. 책 한권을 그가 읽어주는 느낌이다.
연극이 끝나고 모든 관객이 기립 박수를 치는 광경은 처음이다.
현대에는 뇌가 제기능을 안하면 죽음이라고 정의한다.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하고 있어도 뇌가 정지하면 사망 선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심장이 뛰면 살아 있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설레서 가슴이 빨리 뛸 때, 혹은 달기를 해서 심장이 벌렁거릴 때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지 않는가.
그런데 뇌가 기능하지 않는다. 사람이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꾸로 뇌는 멀쩡한데 몸이 전혀 말을 듣니 않는다면 살아있지만 얼마나 괴로울까.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생각하고 많이 움직이자.
얼마전 RISE라는 영화를 보면서 춤을 추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고 몸을 많이 쓰자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생각하고 움직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감사하게!!
나도 이미 장기기증에는 사인을 했고, 연명치료 거부에도 서명해야 하고, 가족들 하고도 미리 이야기 했다.
수명은 자꾸 길어지고 치매도 암 발병도 많아지고 더불어 안락사에 대한 논의도 더 필요 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