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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입니다 (2)

마흔이 묻고 묵십이 답하다

4. 수요일비 내리는 서촌에서          

효경: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사진이 춤을 췄어요. 빛은 파도 소리를 품고, 물결은 빛을 입고요. 요시고 사진전 어떠셨어요?     


현정: 나는 바다가 좋아서 요시원이야. 비가 오는 날도 바다는 좋더라. 바다 사진을 좋아해서 아래층에 있던 스페인 건축 사진보다도 바다 사진만 기억에 남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가기도 힘든 2년을 버티려니 더욱 바다가 그립다. 플라멩코를 배운 덕분인지 스페인 중에서도 세비야를 좋아하는데, 코로나가 좀 나아지면 스페인 남쪽 바다를 보러 갈까?      


효경: 아참,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응답하라 1988 보셨어요? 덕선이 생일 파티 장면이었는데 덕선이 언니의 생일날 덕선이 생일을 같이 축하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시절에 케이크가 비쌌던가요? 저는 큰 오빠랑 생일이 3일 차이라서 큰오빠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초를 같이 불어야 했어요. 그리고 제 생일은 그냥 지나갔어요. 게다가 하필 생일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에요. 드라마에서 덕선이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불만을 토로했는데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런데 그게 마흔이 넘도록 그렇게 서운한 거 있죠?     


현정: 나는 스물네 살 생일 다음 날 결혼을 했어. 항상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셋트였어. 전남편은 일중독이라 항상 바쁘고 저녁을 집에서 먹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어쩌다 생일은 같이 저녁을 먹긴 했지. 그러던 어느 해인가, 친구들과 일주일 내내 생일이라고 축하도 받고 밥도 먹었는데 생일날은 모두 가족들과 지낼 거라고 생각하고 만나자는 사람이 없었어. 결국 생일 저녁에 혼자서 라면 끓여 먹은 적이 있었지. 요즘은 아들이 잘 챙겨주고 있지만 말이야.      

이제는 누가 챙겨주기를 바라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싶네. 그래서 올해 생일에는 집 가까운 사람들 초대해서 함께 밥 먹고 케이크에 촛불도 켜고. 내 이벤트도 내가 만들며 살지 뭐. 내 삶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남의 들러리 하지 말고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갑시다.     



5. 목요일외로움과 진정성에 대한 고찰          

효경: 외로움은 나쁜 것이 아니라 말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느끼는 외로움은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에요. 내 속의 말을 하고픈 사람도 한 겨울 벽난로에서 오르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거예요.     


현정: 나는 지금 외로운가? 사람은 근본적으로 고독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문학도 나오고 예술을 만든다고 생각하니까 외롭다고 그리 우울하지는 않지만. 가끔 심심하다는 생각은 하는 것 같아. 남자친구가 있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잖아. 옆에 누가 있어도 그가 내 맘대로 안 되고 나에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으면 더 짜증나지 않아? 외로울 때 그 느낌에 잠기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혼자라도 유익하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인 거 같아.      

그렇다고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져서 어떤 때는 혼자라서 편할 때도 있고, 또 그러다 외롭기도 하지. 시시콜콜한 얘기는 우리끼리 하자. 좋은 친구가 있으면 되지. 그러려면 친구 얘기를 잘 들어줘야 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니까.     


효경: 진심이란 단어 좋아하세요? 진심을 다해 하루하루 살고, 사람을 만나고, 나를 열어 보이기도 했는데, 진심으로 사는 방식을 세상은 아직 원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이란 단어가 내가 생각하는 뜻과 세상을 살아가는 진심이 다른지 가끔은 잘 모르겠어요.     


현정: 글을 쓸 때, 특히 수필은 논픽션이라서 가장 중요한 게 진정성이라네, 하지만 사람 관계에서는 나의 진정성과 너의 진정성이 다를 때도 있는 것 같아. 타인이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한 만큼 뭔가 돌아오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고, 기대가 크면 실망이 더 크기도 하고. 아마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생긴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만큼 해주고 대가를 기대하지 말자,라고 마음먹은 것 같아.      

내가 후배들한테 혹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기쁨이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면 되니까. 꼭 나한테 갚지 않더라도!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았고, 사회에서 받은 것을 사회에 다시 돌려주자는 생각을 하면 세상이 선순환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영화 같은 생각을 하는 거지.      

나도 모든 사람에게 항상 진정성 있게 보일 수 없듯이 남들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진심이 아니라고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들도 시작은 진심이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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