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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Feb 09. 2020

(Skopje)
산이 많아 푸르다,발칸

마케도니아 일지

Skopje



2019.08.27


핀란드를 떠나 탈린을 거쳐 바르샤바를 통해 마케도니아로 이동하는 어제와 오늘.

핀란드를 떠나기가 무섭게 다시 급격히 골골댄다.

몸은 정말 머리로 제어하기도 전에 방어 시스템을 기가 막히게 가동한다.


매일 빨빨대며 궁댕이 붙일 틈도 없이 돌아다닐 때와는 또 다르게

한 곳에 한 달 정도를 머물다 보니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는지 이렇게 많은 이동이 있는 날은 

몸이 지렁이 젤리처럼 흐물거림을 느낀다.

짧은 1박을 하고 힘들게 이동한 탈린 공항 라운지에서 푸석하고 썩은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찾은 바르샤바 라운지에서 고기, 치즈, 빵 천지 식단에서 맥주와 맨 빵만 골라 흡입.

비행기에서도 맥주를 홀짝거리다 도착 즈음 창을 열고 내려다 마주 본 하늘과 내려다본 아래.

와.....

뭉게뭉게 실시간 여러 종류의 강아지 모습으로 변신하는 귀여운 구름과 

그 아래 펼쳐진, 발칸의 뜻이 산이 많아 푸르다.  이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 산맥이 펼쳐져 있다.

이름의 뜻을 알고 더 가고 싶고, 알고 싶던 발칸.

이런 산맥의 모습은 내려다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만족하며 마케도니아 스코페 공항에 입장.

아. 말로만 듣던 수화물 파손이 눈앞에서 생긴다.

제일 먼저 나온, 한국의 마지막에 급하게 한 개 더 급조한 캐리어 한 개의 손잡이와 바퀴 자리가 허전하다.

허허허.

다행히 바퀴 3개가 남았고 손잡이도 하나가 남았고, 분실도 없었고, 터지지도 않았구나.

허허허.

힘껏 던져주신 LOT 항공 관계자분. 감사해요. 


그렇게 궁금하던 마케도니아에 도착하자마자 입국 문을 열고 들어서니 

웬 많은 인파들이 저마다 꽃다발을 품에 안고 목이 빠져라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본다.

기대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갑자기 더운 공기와 망가진 캐리어에 어벙하고, 당황한 상태인 나와 토미도 그 광경이 어색해 주위를 보며 

여기도 뭔 유명인이 오나 봐.

그런 것 같지?

왠지 친근한 작은 공항에서 시내로 가기 전 데나르 환전을 제일 먼저, 다음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유심을 장착하려는데 버스는 불과 몇 분 전에 출발. 혹시나 하고 밖을 나가보니 없다.

얄짤없구먼.

유일한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며 마케도니아어 발음이 어렵고 번역기의 로봇 발음이 미덥잖아서 

매표소 직원분께

'안녕하세요- 즈드라보' 와 '고맙습니다- 팔라  의 발음을 확인하며 두 마디를 익힌다.

이제 이 두 마디로 최소 두 달을 버틸 것이다.


다음 차 시간까지는 2시간 반이 남았다.

허허허.

기다리지 뭐.

그렇지 않아도 홈페이지를 통해 대충 버스 시간표를 봐 둬서 원래 가려던 시간에 가게 된 것이라

여유로울 수 있다.

공항 내 우체국에서 환전을 하고 온 토미.

10여만 원을 바꾸는데 수수료가 2만 원 정도 들었단다.

허허허.

이 나라 시세로 2만 원이면 정말 도둑인데?

혹시 이 일기를 보는 분이 계시다면 꼭 ATM으로 돈을 장만하시기를 바라며...

유심도 무제한은 없고 한 달 이용 8기가와 20기가뿐.

유심 가격도 어마하다.

당연히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니 일단 2달 머물 우리는 20기가로.

유심이 라우터와 제대로 연동되지 않아 끙끙 거리는 토미를 잠시 두고 사람들과 주위 분위기에 시선을 두니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예쁘게 차려입고 잔뜩 상기된 미소로 기다리던 사람들은 바로

단지 자신들의 지인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기다렸다가 꽃다발을 주고, 악수와 포옹을 하며 만난다.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

내가 지내던 환경에서 보던 것으로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그들을 내 데이터대로 상상한 고정관념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고, 너털웃음 짓게 한 짧고 강한 시간이다.


공항과 공항 밖의 풍경이 딱 달랏 공항이나 호치민 공항 국내선 청사 앞모습.

그래서 밖에 줄줄이 피워대는 담배 사람들 덕에 바깥 구경은  못하지만 풍경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유독 아이들이 예쁘다.

눈깔사탕만큼 크고 별처럼 쏟아질 듯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

왔다리 갔다리 공항 안을 걷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할아버지와 엄마와 함께인 듯한 뽀글이 머리 아이 발견.

아오. 어쩜 저렇게 예쁠까!

귀여워서 웃으며 즈드라보! 인사를 건네니 수줍게 웃으며 엄마 뒤로 숨는 아이.

껄껄 웃는 할아버지와 엄마 주위를 맴도는 아이에게 아껴둔 초코바를 건네니 날름 받아서 와그작 베어 물고

통통한 얼굴을 초코 범벅으로 화장한다.

아오 귀여워라!!!!

덕분에 엄마는 아기 얼굴을 닦아내느라 고생이시다. 

아이코. 초코 없는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드디어 버스를 탈 시간이 되어 정류장으로 가니 어디서들 기다렸는지

한산하던 정류장이 사람들로 잔뜩. 그리고 모두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괴로운 현실.

어쨌든 버스를 타고 버스 안에서 난생처음 보는 강렬한 노을을 향해 달리다 보니 

호스트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하늘과 버스에서는 보지 못한 칙칙하고 회색으로 가득한  가랑비가 흩뿌리는 스코페 정류장에서

일주일 머물 스코페 집주인 마틴을 만나 집을 소개받고, 8시가 다 되어 캄캄해진 하늘을 만난다.

일정을 힘들지 않았으나 몸이 점점 심상치 않아지는 오늘이지만 

슈퍼마켓을 찾아 나서며 정말 오랜만에 느낀 어두움.

아. 서울을 떠나고선 처음으로 어두운 저녁을 만나는구나...!

그렇다.

백야의 공간을 벗어나 익숙한  어둠의 저녁 공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황홀했고, 예쁘고 순수한 사람을 만나 신선하고 행복했고, 

역시나 담배 냄새가 가득해서 괴롭고 아픈 마케도니아.

좋지 않은 공기와 매연과 담배 냄새에  몸이 극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보고 싶던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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