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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Feb 03. 2020

(핀란드 일지) Finland - Helsinki

돌아올게




점점 쌀쌀해지는 8월 말의 헬싱키 공기를  느끼며 떠날 날이 다 되어감을 실감한다.

내일과 모레는 또 가벼운 산책을 끝으로 열심히 밥해 먹고, 열심히 이사 준비를 해야지.

오늘은 헬싱키 에이라 해변부터 쭉쭉 밟히는 대로 헬싱키 도심과 자연을 뚜벅거리다 와야지.

그리고 핀란드에 들어오면서 처음 만난, 거의 매일 길을 지나쳐왔지만 

지나치지 않고 보고 싶어 남겨놓았던 침묵의 교회도 가봐야지.


그대로의 바위와 바다가 아름다운 에이라부터 마주 보고 오늘의 인사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다큐에서 핀란드 아주머니들이 물가에서 카펫을 깔고 탈수하고, 건조하는 모습을 봤었는데

처음 올라가 보는 에이라의 끝부분에서 그 빨래터를 만난다.

이제는 금지되었다는 카펫 빨래와 빨래터.

과거 카펫의 때를 벗겨내던 정겨운 장소가 이제는 연인, 가족 그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나란히 앉아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의 때를 벗겨낼 듯한 장소로 변화한 듯하다.


헬싱키는 자연도 변화무쌍 즐겁지만 건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풍스러우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상당히 단순한 양식과 장식.

마치 종이 인형의 집처럼 납작하고 곧은 단면에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아주 정교하게 그린 인형의 집 같은 느낌이라 재미있고, 저 문을 열면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방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평면적인 벽에 익살스럽고, 멋스러운 조각상은 덤.

다소 삭막하고 기교 없다 보일 수 있는 이 거리의 느낌이. 기교 없고, 단순한 그 느낌 때문에 좋다.


오늘이 마지막인 듯 헬싱키 외곽을 뚜벅이며 

해, 하늘, 구름, 바다, 새, 개, 사람 모두 눈에 깊이 넣으며 걷다 보니 침묵의 교회에 도착한다.

20대 중반까지는 미술, 박물관, 건축, 문화유산 등에 늘 강하게 매료되어있던 나는

한 번의 앓이가 지나간 후 인간이 만든 그 모든 것들에 흥미를 잃었다.

그러나 핀란드를 조금 알게 되면서 꼭 보고 싶었던 건축 하나는 침묵의 교회.


멀리서부터 찬찬히.

조금씩 다가가 겉면의 나무결부터 찬찬히.

그렇게 살며시 들어온 이 작은 공간에 앉아 있자니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냥 이유도 조건도 없는 무조건적인 눈물.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이유를 들여다보니, 

그간 인간 사회의 만연한 미움.

도저히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사회의 무지와 폭력, 탐욕 같은 것들에

답답하고 마음 아픔이 터져 나온 듯하다.

의자 외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던 곳에

수많은 인파와 함께 작은 십자가와 예매에 관한 스케줄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이 작고 평화로운 의도의 공간도 그 마음이 아프고 겁에 질린 무지한 누군가가

'십자가'의 이유로 파괴를 일삼지 않을까.라는 염려와 섬뜩한 느낌이 심장을 쑤시고 지나간 것 역시

의도치 못한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다름' 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다름으로 인해 모두는 서로를 사랑하고 끌리고 아름답게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다름이 결국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나의 다른 모습 임도 분명하다.

초록의 잔디 곳곳에 노란 민들레와 보라색 제비꽃, 하얀 계란 꽃, 빨란 멘드라미가 없다면

단지 지루한 인위적이고 깔끔한 공원일뿐이다.


묵직한 마음, 묵직한 기분.

그리고 늘 그렇듯이 아쉬운 마음.

이제 밥 먹고 이사 준비하자! 는데 아침까지도 꽃봉오리가 꿈쩍하지 않아 

내가 떠나면 활짝 일 것인가 보다. 싶던 우리 집 초록이가 꽃을 피웠다.

어떤 꽃일까. 궁금했는데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봐도 참으로 아름답고, 귀여운 분홍의 꽃이다.

작은 꽃 안에 한 잎 한 잎 예쁜 분홍으로 빼곡하게 물들여진 귀여운 꽃.

짧은 한 달 동안의 친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힘껏 꽃망울을 터뜨린 것 같아 울컥한다.


핀란드 같고, 핀란드 사람 같던 초록이.

그리고 독한 차 냄새와 담배 냄새로 괴로웠지만 마스크 없이 두 달을 힘껏 숨 쉴 수 있게 해 준 핀란드.

꼭 돌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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