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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Mar 11. 2020

(Skopje)
내 눈에는 다름이 없는데 네 눈에는

마케도니아 일지

Skopje




2019.08.28


어제의 낮은 공항에서 뿐이었으니 오늘은 많이 걸어보자.

버스를 타고 슝, 메튜의 차를 타고 슝, 걸어서 본 것이라곤 집 근처 작은 슈퍼마켓 뿐이라

스코페의 일상이 궁금해 일찍부터 근질근질하다.

게다가 깔끔한 신축 아파트지만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들어오는 담배 냄새에 

온 집안이 연기 굴이라 상태가 더 골골. 빨리 집을 탈출하고 싶다.

어제 사 둔 덜 익은 바나나로 대충 아침을 챙기고 일찍 나선다고 나선다.


짙은 어둠에 가려졌던 풍경이 마법에서 깨어난 듯하다.

집 앞은 온통 공사판이고 우리 숙소를 빼고는 모두 철거 직전의. 

말 그대로 쓰러져가는 집들과 뭉개진 건물들 천지이다.

10여 년 전 중국 청도 출장 중 차로 이동하며 본, 문도 창도 지붕도 없이 뻥 뚫린 집과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쨍함 속에서 바라본 회색의 풍경과 쓰러져가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 더 쨍쨍함 속에서 터벅터벅.

몸이 영 불편하니 싫어하는 쨍함이 더 공격적으로 다가온다.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은 더 그렇다.

익히 알고 있던 수많은 삐까번쩍 동상과 대형 조형물, 건축, 레스토랑. 

바로 반대로 시선을 돌리면 굶어 죽을 듯 말라 있는 개와 고양이, 새, 다 쪼개진 벤치, 

뒤집어진 인도, 쓰레기 오물 더미......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의 도시는 처음이다.

마음이 계속 그늘져지는 느낌이다.


태양은 어쩜 이리도 빨리 거리를 달궈주는지 나는 이미 온몸이 따끔거리고 아프다.

바나나를 부실하게 먹어 그런지 배도 빨리 꼬르륵.

밥을 먹어야겠는데 먹을 음식이 있나 모르겠다.

서양식 음식은 먹기 싫고, 비건 식당을 찾아보니 역시나 메뉴는 끌리지 않는 메뉴이고 또 멀다.

지금 당장 배가 고프고, 아무리 비건 이래도 버거니 피자니 하는 것 따위는 먹고 싶지도 않다.

사실 VEGAN이라고 쓰여 있는 것들은 반갑지만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거의 취하지 않는다. 

그냥 뭐든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면 좋겠다. 


주변의 상가 건물에 들어가 해를 피하며 있으니 헬로우! 

부모님과 있던 예쁜 꼬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래. 나도 하이! 

다른 상가에 들어가서는 화장실을 찾으며 분주하게 두리번거리는데 이번에는  

아주머니와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조용한 꼬마 아이가 함께

아주 예의 바르고 또 수줍게 사진을 같이 찍어줄 수 있냐고 묻는다.

응? 왜? 

소만 한 눈을 가진 수줍은 예쁜 아이와 엄마의 부탁으로 함께 사진을 찍는다.

나도 처음 보는, 아니면 흔히 볼 수 없는 강아지나 다른 동물들을 보면 신기하고  궁금하고 담고 싶은 것처럼

이들에게도 내 외모가 그런 느낌인 걸까?

나는 어디를 다녀도, 어느 사람을 만나도 전혀 이질적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쌍문동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핀란드에서나 베트남에서나 사람은 다 똑같아 보이는데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나 달라보이나보다.

그것도 그런 게 나는 한국에서도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명 탄탄하고 큰 몽골인의 얼굴형을 갖고, 쌍꺼풀이 없다.

반면 토미는 한국에서도 '외쿡인' 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또 한국에서는 외국인 취급을 받는 일이 정말 많은

외모를 가져서인지 이들에게는 토미는 관심 밖이다.

아마 꼬마들은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 기린을 만났어! 오늘 하이에나를 만났지 뭐야!! 하면서 동양인 여자와 사진 찍을 것을 자랑할 것이다.

허허허.

귀여운 녀석들.

과거 이탈리아나 프랑스, 이번 여행에서의 에스토니아, 핀란드, 폴란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시선이

이렇게 다가오니 기분이 묘하다.

나는 여기서 계속 기린이고, 하이에나고, 마다가스카르 원숭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메인 광장을 둘러보다가 중식당을 발견!

중식당은 웬만하면 채소 볶음과 밥이 있기에 메뉴를 살펴보니 뭐가 있긴 있다.

채소 볶음면. 

그거면 됐다.

밥이 먹고 싶지만 있는 게 어디냐 싶어 180데나르의 채소 볶음면을 시킨다.

밀가루 면이 아니고 쌀국수 면이 가능하여 주문한 채소 볶음면.

사진과 생각보다 양이 터무니없지는 않고, 정말 오랜만에 먹는 베트남 맛이 나는 국수라 

그릇까지 씹어먹을 기세로 맛있게 먹었다.

이제 허기는 면했으니 더 걸어보자. 이 메인 거리 말고 더 깊숙이.

나무도 없고, 온통 도로와 회색의 칙칙한 건물들, 그 속에  카지노와 현금인출기가 한국의 교회의 대만의 편의점만큼

길에 치인다.

더 걷고 싶지는 않는데 발걸음은 계속 걷기를 원하나 보다.

그 땡볕에, 나무 그늘 한 점 없이 정말 싫어하는 도롯가 대로변을 쭉쭉 걷는다.

골목을 보고 싶은데 들어가는 골목마다 조금 들어가면 막혀있고, 무너진 건물들뿐이다.

웬만해선 갈증을 느끼지 않는 나도 음료가 간절하다.

그런데 모든 곳이 문이 닫혔다.

제일 더운 시간은 문을 닫는 걸까? 마케도니아는 전기세가 무척 비싸다던데 그래서 낮 동안 쉬는 걸까?

문을 연 곳은 카지노뿐이다.

이미 숙소로부터 2시간을 넘게 걸었는데 보이는 풍경이 똑같아서 내가 여기를 왜 걷고 있을까. 자꾸 의문이 든다.

불편한 몸뚱이에 쨍함은 나를 더 까칠하게 만든다.

문명의 도움을 받아야겠구먼.

구글을 켜보니 스코페에 오기 전 체크해 두었던 유기농 식품 판매점과 비건로푸드 가게가 근처에 있다.


오호!

젠장.

희망이 금세 젠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오가닉 매장 역시 문을 닫았다.

무려 낮 12시부터 7까지 문을 닫는단다! 그럼 언제 장사하시나요!!!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니 채소들이 잔뜩 있는데!

하아...

자주 수분 섭취를 시켜줘야 하는 토미가 신경 쓰여 바로 근처에 있던 비건 카페를 찾는다.

이런 데서 장사가 되나...  이런 곳에 이런 가게가 있네... 싶은 곳에 문을 열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격하게 반김을 받고 초코케이크 두 개와 핫초코, 초코쉐이크를 주문하니 로푸드 칩과 올리브를 서비스로 준다.

3시간을 걸으며 본 회색의 칙칙하고 유령 도시 같은 곳에서 만난 숲 같던 카페.

이 곳만이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미적지근하고 먹을수록 목이 더 마른 음료와 매우 맛있었던 로푸드 케이크를 먹고

다시 3시간을 걸어 맥주를 사 들고 담배 냄새가 빠지지 않은 스코페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뭔가 찌뿌둥한 몸만큼 마음이 찌뿌둥 해지는 도시와의 첫 만남.

오늘은 담배 좀 작작 피기를 바라며.

내일은 다리를 건너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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