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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Mar 27. 2020

(Skopje)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마케도니아 일지



밤새, 아침까지. 그냥 집에 있는 내내 고마운 이국의 이웃 덕분에 

집에 있음에도 하노이 시내를 돌아다닌 것 같은 냄새가 몸에 잔뜩 배어 있다.

요즘은 어떤 것에도 마음이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담배 냄새만은 참다 참다 욕지기가 터지기의 반복이다.


개코를 가진 덕분에 미세한 좋은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개코를 가진 덕분에 냄새로 미리 감지하여 지인들을 위기에서 구할 만큼 

남들은 맡을 수 없는 좋지 않은 냄새도 먼저, 자세히 맡는 덕에 괴롭다.

덕분에 여전히 골골골. 

스코페에서의 일주일은 또 이렇게 병자 이방인으로 마감할 것 같아 씁쓸하고 화가 난다.

젠장.

왜.라는 이제 아무런 쓸모도 없이 혼자 뒤집어지는 의문을 갖지 않기로 하지만

그래도 남까지 병들게 하는 짓거리에 내 안의 모든 폭력성이 일깨워지는 나날들이다.

바로 옆집, 밑집에 본인으로 인해 매일 병들어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나 인지하는지 모르겠다.

왜!!

무지렁이야!!!!

다시 눈이 매서워지고 입이 비뚤어지는 나다.


요 며칠 다니고선 다시는 땡볕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담배연기로 가득한 집을 버리듯 서둘러 나선다.

오늘도 자글자글. 

발걸음마다 아픔과 씁쓸함이 걸리는 거리.

보이는 강아지, 고양이, 까마귀 모두 비쩍 말라서 쓰레기통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그 길 건너엔 누구를 위해 만든 건지 의문스러운 삐까번쩍 조형물들이 괴물처럼 즐비하다.

쨍쨍하고 사람 없는 다리를 치타만큼 크고 귀여운 멍멍이 무리들과 함께 건넌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목줄 없이, 인간의 간섭 없이 동물 본연의 품위 그대로

자유롭고, 고귀해 보인다.

다만, 인간들 사이에 살고 있으니 밥은 굶지 않았으면 좋겠다.


삐쭉 모스크가 중심이 되는, 말로만 듣던 올드 바자르가 보인다.

정말 터키에 온 듯 사람들의 차림도 사뭇 다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분위기와 또 다른 스코페의 느낌은 아시아, 터키의 색이 짙어서 그랬나 보다.

공항 도착부터 베트남과도 느낌이 참으로 비슷해서 낯선 향기가 아니었다.

빙글빙글 빠진 곳 없이 구석을 뚜벅거리며 눈에 담긴 바자르는 

건축과 사람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딱히 재미가 있는 장소는 아니다.

나에겐 너무 깨끗하고 잘 닦인 상가거리.

그리고 아마도 자꾸 눈에 밟히는 마르고 힘없는 고양이와 까마귀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햇살이라고 말하기에 그냥 태양 모자를 쓴 것 같이 타들어갈 것 같다.

다시 다리를 건너 후퇴하여 광장 앞 수제 맥줏집으로 피신한다.

물가가 저렴한 도시로 오니 피신을 무려 '수제 맥줏집' 으로 하는 용기가 생긴다.

두둥!

담배 냄새가 두렵지만 그나마 덜한 곳으로 자리를 잡고 IPA, LAGER 를 주문하고 

토미의 피자와 나의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캬!

한화 3400원 정도의 돈으로 IPA 수제 맥주를 마시다니! 

이런 호강을 누려도 되는 건가!!

토미는 라거와 피자 맛도 꽤 좋다고 한다.

맥주 맛이 좋고, 밖은 여전하기에 해가 질 때까지 궁댕이 붙이고 있고 싶어서

앞에 앉은 스코페의 존레논이 커피도 다 마신 것 같은데 물과 담배를 먹어대는 것도 견뎌 내고

직원, 사장 일동의 담배 냄새도 견뎌냈는데 한꺼번에 들어온 부부 담배단들의 긴급 투입으로

긴급 탈출을 한다.

IPA의 쌉싸래한 맛이 혀끝에 남기도 전에 냄새로 절어서 또 성질이 난다.

후아...


스코페엔 광장과 동상, 작은 시장, 레스토랑뿐이고 몸뚱이의 상태도 좋지 않아 집 쪽으로 향한다.

집에서 코 휴지로 막고 창문 열고 맥주나 마시자.

철거, 공사 중인 쓰러져가는 동네에 뭐가 있을까 싶은데 뒤편으로 돌아가 보니 작은 피자가게가 있다.

오호. 토미 안주는 건질 수 있겠군.

키도 크고 온통 흰옷을 입은 멋쟁이 요리사 한 분이 계시는데 혹시나 손짓 발짓으로 여쭤보니

메뉴에도 없는, 버섯이랑 소스 등만 넣고 피자를 만들어 주신다 한다.

그리고 스몰, 미디움, 라지 중 궁금한 라지 사이즈를 주문.

나 같은 먹깨비가 아닌 이상은 주문을 삼가길 바란다.

정말 한국의 밥상만 한 피자가 나왔다.

우린 서로 되도 않는 유아 영어와 유창한 마케도니아어로 대화를 했는데 그런 특별식을 만들어 주시고

사진까지 찍어주시고, 사진 찍으라고 '피자 폼' 까지 잡아주신다.

몇 조각을 뜨끈한 상태에서 먹도록 잘라주셔서 옆 슈퍼 맥주와 함께 먹고 남은 대왕 피자를 포장해

냄새 소굴로 돌아와 밀가루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

한화 8000원의 밥상 피자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비건 피자를 주문해보고, 기꺼이 만들어 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피자 맛보다 오늘의 이런 경험이 너무나 맛있는, 이방인이라서 기꺼이 누리는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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