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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Nov 18. 2020

(Macedonia Ohrid)
그래도. 전진

마케도니아 일지






2019.09.28


오흐리드에서 숲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남은 기간들이 감옥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골목 탐험도 불가능한 오흐리드에서 호숫가를 제외하면 반대편 숲길 뿐이다.

아주 적은 정보에서 얻은 평화롭고, 신비로운 호수에 끌려 

내 멋대로 오흐리드의 이미지를 만들고 온 것이 가장 큰 실수이지만.

냐짱처럼 물을 낀 휴양지는 나와 맞지 않는다.라고 자꾸 생각이 굳어질 것 같다.


아직도 낮에는 해가 쨍쨍하니 어딜 가도 걸음마다 호숫가를 점령한 하얗고 벗고 누운 덩어리들뿐.

높은 산이면 꼭 구석구석 뒤져 올라가야 하고, 맑은 물이면 꼭 몸을 담그거나 휘저어야 하고, 

신비로운 동물을 보면 꼭 찾아내어 뭘 하고야 마는.

자유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씌워진 자기중심적 사고가 불편하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깊이,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호수와 그 주변의 사장과 돌밭은 수많은 생물들이 사는 주거지.

조금 떨어져 그 속에 사는 주인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그 위에서 살고 있는 주인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몸과 마음이 자유롭다.

지난 일주일도 그런 풍경, 그런 시간대에 산책을 하다가 오늘 서둘러 아침 산책.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면 바로 온갖 냄새에 숨이 답답하다.


20분마다 한 번씩 연결이 끊기는 마케도니아의 유심. 최대 1분에 5번도 끊기는 인터넷.

이 나라의 유심은 한 달 20기가, 800데나르 상품이 최대이다.

핀란드보다 비싸다.

벌써 몇 번째 충전인지.

삼성폰의 광고와 상품이 90% 메인으로 있는 시내의 매장에 들러 아까운 거금을 들여 충전을 하고.

사람과 차들이 많이들 나오고 있는 시간이 되어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며 

가게에 들러 처음으로 와인을 구입해 보고, 유럽 일정 처음으로 파스타도  구매한다.

오늘따라 산책길에 매일 만나는 멍돌이들이 너무 외롭고, 슬픈 눈빛이다.

풍경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빛나게 아름다운데 멍돌이들은 나와 같아 마음이 쓰인다.


지난주에 지진을 겪고 알바니아행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처음 서울에서 계획할 때처럼 10시간이 걸려도 불가리아로 빠질까.

오흐리드에서 마케도니아 90일을 채우고 오흐리드 공항에서 영국으로 빠졌다가 포르투갈로 들어갈까.

마지막에 포기했던 조지아로 아예 빠져버릴까.

고민을 해도, 걱정을 해도 사실 다 거기서 거기.

결국 알바니아 티라나로 결정을 하고 티라나- 포르투, 포르투- 바르샤바행 티켓을 예매해버렸다.

그리고 어제 티라나의 숙소까지 예약 완료.

여차여차 마음이 편치 않았던 시간과 티라나행 확정을 축하하고자.

둘 다 맥주 파라 거들떠보지도 않는 와인이 1리터에 2000원이라서, 

좋아하지도 않는 파스타를 간만에 토미 양식을 먹이려고 구매했다.

유럽 일정 내내 한 번도 먹지 않았던 파스타지만 오늘은 통밀 마라 파스타! 를 잔뜩 만들어 아침부터 내내 회식.

술이 떨어져 또 사 오고, 안주가 떨어져 또 만들고.

아침부터 밤까지 욕심부려 배를 채운다.

마음의 허기가 질 땐 자꾸 뱃속으로 쑤셔 넣어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미련한 버릇이 있다.


매일 같은 길, 

매일 같은 음식,

매일 같은 불편함,

매일 같은 회의.

아직도, 아니 오히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더 혼란스럼고, 모르겠고, 놓고 싶은 것들 투성이라 힘들지만

그대여서 고마운 매일, 그리고 또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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