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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Nov 27. 2020

(Macedonia Ohrid)
이웃, 거북, 비빔밥

마케도니아 일지







2019.10.01


매운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만든 매운 음식을 먹으면 다른 사람은 장염에 걸려 설사를 쫙쫙 뽑아낼 정도의 매운맛.

그러나 한국에서 떠나기 전 몇 달 전부터는  현미밥, 오이, 고추, 고구마, 김, 과일만 먹고산 것 같다.

사랑하는 쿰쿰한 유기농 덧된장도, 채수에 고춧가루 팍팍 넣어 콧물 줄줄 흘리며 먹던 얼큰한 전골이나 

국물의 양념 맛도 당기지 않고 몸이 부담스러워 자연스럽게 먹지 않게 된 양념과 조리된 음식들이었다.

현미밥 고봉밥을 김에 오이와 고추를 함께 싸서 뚝딱 밥을 먹고 또 고구마를 10개 정도 먹는 식사.

그렇게 반년 넘게 먹다가 떠나게 되었다.

떠난 후로는 그런 양질의 재료들이 없으니 다시 양념으로 정신의 허기를 달랜다.

아껴먹던 된장은 바닥을 보이고, 고추장은 아예 가져오질 않았고, 간장은 가루 간장, 

한살림 청양 고춧가루도 이제 한 봉이 남았다.


여기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는 정말 아시아 식재료가 없다.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더욱 정신적으로 허기가 생기는 법.

여기에 와서 한식에 대한 갈망이 무진장 커지고 있는 하루하루다.

식물식을 하니 외식을 할 때면 별로 선택의 여지없이 지겹게 먹어서 좋아하지도 않는 비빔밥! 이 

요즘 어찌나 매일 눈앞에서 아른거리는지.

밖에서 외식을 해야 할 때 계란, 고기를 빼고 주세요. 하고 어렵게 얻어 끼니를 해결하던,

멍멍이 밥도 요것보다 맛나것다. 싶던 그런  잔반을 담아주는 것 같았던 식당의 비빔밥도 아른거린다.

사실 비빔밥이라는 것이 다 하나씩 만든 반찬을 넣고 또 양념을 넣어 비비는 음식이라 

왜 그렇게 먹어야 되는지,  만드는 것도 번거로운 그 음식이 참 한국스럽다. 그렇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국 애호박과 비슷한 이곳의 호박, 요상하게 아삭거리는 맹맛의 양송이버섯만으로도 그냥 비벼 먹고 싶다.

비벼 먹는 그 행위가 하고 싶은 걸까. 그건 모르겠다.


늘 같은 오늘의 산책길.

오늘은 아파트 주민분들을 많이 만난다.

모두 친절하게 즈드라보!

그리고 숲길에서는 뜻밖의 친구를 만난다.

바로 육지거북!!

세상에. 

육지거북을 정말 사랑하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손바닥만 하고 봉긋하게 솟은 등을 가진 귀여운 거북이.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해주렴!


별것 없는 이곳의 재래시장에 또 들러본다.

마트보다 품질이 좋지 않고, 가격 또한 비싼 재래시장.

푸른 잎채소가 너무나도 귀한 이곳에서 계절이 변함을 보며 두 달째 지내고 있으니 

혹시나 다른 채소가 나왔을까 하는 기대에 정기적으로 들러보는 시장이다.

오오오!

시금치다.

가끔 근대나 샐러리를 사는 나름 자주 가는 주인아저씨 댁에 시금치가 있다!

마케도니아에 온 후로 유기농 채소를 만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놓고 채소라면 감사하며  먹는 이곳의 삶.

어디서 자랐는지, 뭘 쳐서 키웠는지 알 수 없지만 시금치 1킬로를 데려온다.

오늘이다.

오늘 번거롭게  비벼먹는 행위를 해 보자.


돌아오는 길에 토미 간식을 사주고 싶어 처음으로 들른 제과점.

몇 군데 들러 혹시 비건 옵션이 있는지 알아보니

한 곳에서 비건 감자 뷰렉과 비건 치즈 페스트리, 비건 치즈 올리브 빵을 추천받아 토미 손에 쥐여주고 돌아온다.

다른 빵을 먹으래도 늘 저렇게 먹으려 하는 토미.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늘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토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러한지 알기에

그냥 사랑의 모습으로 그대로 하도록 둔다.

이렇게 간식을 골라주면서.


막상 사 오니 귀찮다.

게으름뱅이에겐 너무 번거로운 메뉴인 비빔밥.

그래도 식욕이 그 게으름을 일으켜 조촐한 한 상을 만들게 한다.

여기서 구한 베트남 간장이나 굴 소스 맛이 나는 800원짜리 불가리아산 간장을 넣어 슥슥 비벼 먹으니 

뱃속도 정신도 개운한 포만감이 든다.

그러다가도 역시 

이거 매일 우리가 차려먹는, 한꺼번에 끓여서 밥에 비벼 먹는 거랑 뭐가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매일 어떤 형태로든 비빔밥을 먹고 있었음을!

후식으로 한국 감자와 아주 맛이 흡사한 오흐리드 찐 감자로 마무리.

다시 저렇게 따로 구색을 갖춰 먹진 않겠지만

간사한 식욕의 허기를 잠시 채운 것 같아 만족스럽다.

내일은 다시 우르르 때려 넣고 끓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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