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Dec 30. 2020

(Macedonia Ohrid)
마음이 지어낸 좋은 날

마케도니아 일지








2019.10.16


9월부터 지금까지 일교차가 참으로 대단한 오흐리드다.

온도의 변동이라면 오전의 온도만 조금 더 낮아진 것뿐. 

낮은 여전히 25도 정도에 아침은 5도 정도?

홑 침낭으로 버티고 있는데 몹시도 추워 매일 웅크리고 자도 덜덜덜 깨어있기를 반복하고 버티다가

입 돌아가고, 뼈 바스러지겠다. 싶어 얇디얇은 담요 하나를 장만했다.

생활용품, 공산품 등이 부족하고 열악한 이곳에서 구한 담요는 말이 담요지. 

한국의 '다있어'. 가 그리울 만큼 그냥 부직포에 가깝다.  

그리고 정말 부직포처럼 찢어진다. 

마케도니아의 공산품 품질은 스코페에서부터 매번 놀라움을 갱신하고 있다.


드디어 티라나행 버스 티켓을 구했다.

9월 말, 10월 초에 알아보니  9월 말일 정도를 끝으로 성수기 끝과 함께 차편도 끊겼다. 하여 

여행 처음으로 여행사를 싹 돌아다니며 구해야겠다. 생각하고 나섰는데

구글 정보에서 미리 알아본 정보로 처음 들어간 올드타운의 여행사에서 바로 구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에 들어올 때에는 여기서 90일을 채울까. 하는 마음이 가장 컸지만

막상 오흐리드로 와서 지내보고 여기저기서 바쁘게 땔감을 장만하고, 벌써부터 연신 태우는 것을 보고 

이미 떠나자. 로 마음을 먹었었다.

우리가 오흐리드를 떠나는 날은 10월 30일.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차편이 있다 하고 하루 한대 오전 7시, 1인 15유로.

모든 게 정확하지 않은 것 같은 이 도시에서 혹시나 하여 취소될 수 있는지, 좌석은 어떤지, 정류장은 어딘지.

옹알이 영어로 질문을 해대고서야 데나르로 돈을 지불하고 티켓을 구입했다.

그런데 버스회사 홈페이지에서 본 탑승 장소와 여행사에서 알려 준 탑승 장소가 다르다. 

이런.

버스 타기 전날쯤 한번 아침 일찍 나가봐야겠다.


우중충과 비가 잦던 딱 1주일 정도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처음 도착했던 9월과 다를 바 없는 날씨의 연속.

하늘이 우울하고, 지겹게 느껴질 정도다. 바람도 이젠 거의 불지 않는다.

비가 많고 흐린 날이 많은 나라에는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던데 

살면서 나에게 이렇게 우울하고 지루한  날씨는 처음인 듯하다.

이런 날씨의 동네도 세상에는 있구나. 싶다.

냐짱에서도 이런 느낌이긴 했지만 고작 1주일 지내보았으니 알 수 없다.

나에겐 이렇고 이런 날씨이지만 이래서 서양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찾아오는구나. 싶다.


처음으로 아이바르의 매운 버전이라는 루테니카. 를 먹어보았는데 특유의 불 맛은 좋지만

토미가 요즘 먹는 비건 마요를 슬쩍 맛봤던 것보다 훨씬 느끼해서 놀랐다.

매운 고춧가루를 팍팍 넣고서야 간신히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베트남 고추를 씹어먹고 싶다.

후아.


오늘 조금 늦은 오전 산책엔 유난히 동양인 패키지 관광객들이 많다.

토미와 이야기하며 늘 가던 돌길 골목을 지나 걷는데 앞에서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한국인 부부가 바로 앞에 계셨다.

스코페 공항버스에서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나 짧은 인사를 나눈 것이 5월 한국을 떠나 나눈 첫 한국말이었는데 

까네오로 가는 같은 동선의 짧은 길을 걸으며 한국어로 대화하니 참 그 몇 마디가 편하다.

9월에 출발해 70여 일간 동유럽 자동차 여행 중이시라는 부부.

지금도, 앞으로도 건강히 행복한 여행길 되시기를.


그 와중에 뭔가가 왼쪽 손을 살짝 스쳐서 

응? 그냥 걸어가는데 

바로 오른쪽을 앙.

응?

뒤를 보니 큰 멍돌이가 뒤를 계속 따라왔었나 보다.

항상 멍돌이들을 살피며 걷는데 오늘은 한국인 부부와의 짧은 대화에 집중하느라 주위를 보지 못했더니

녀석이 봐 달라고 '입짓' 을 한 것이다.

아. 사랑스러워!!! 마음이 몽글몽글 말캉말캉. 무진장 행복하다아!!


이미 늦게 나와 쨍쨍할 데로 쨍쨍해진 시간.

기분이 둥둥 하늘이라 그런지 더 걷고 싶어 숲길을 내려와 반대쪽 호수의 일명 '지루한 길'. 을 걷다가 옆길로 빠지니 탁한 물과 버려지고 주차된 수많은 배들이 있는, 좌우엔 나무들과 정면엔 산을 보며 걷는 짧은 산책로가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와 포근한 푸른색의 산이 고맙다.

땡볕은 포기하고 기분 좋게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서 밥해 먹기는 그른 시간.

집 밥이 지루할 토미.  외식을 시키고 싶다.

관광객 하나 없는 우리 동네에서 더 깊숙하게 들어가 찾은 작은 빵집이자 식당에 들어간다.

다행히 담배 피우는 사람이 바로 빠져나가 안쪽에 하나뿐인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며 

뭘 먹나.

나는 감자튀김이랑 빵이나 먹어야 되나. 싶은데 

역시 피자가 줄줄이 있는 와중에 비건 피자가 있다.

시금치 뷰렉도 있는데 그건 없대고 비건 피자는 된단다.

오호라! 비건 피자와 베지테리아나 피자를 시킨다.

그냥 빵집. 한국 같으면 작은 분식점 같은 곳인데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포장한 것을 찾아가느라 바쁘고, 오가는 동네 주민들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미소와 즈드라보를 날린다.

언제 봐도 미소는 따뜻하고 고맙다.

드디어 나온 피자.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채소가 듬뿍이라 신난다. 맛도 딱 보이는 고 맛.

토미의 베지테리아나 피자와는 치즈의 차이만 나고 토핑은 똑같은데 맛이 괜찮다. 한다.

시내 맥주값의 절반인 60데나르

비건 피자는 180데나르

베지테리아나는 190데나르.

신나게 먹고 더 먹으려고 고민 중인 먹깨비는 때마침 들어온 이웃 가게 아줌마들의 담배 잔치에 

그만. 을 선언.

그래도 다행이다.  시킨 건 다 먹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Macedonia Ohrid) 다시. 나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