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Jan 06. 2021

(Ohrid)
또 하나의 이타카. 오흐리드

마케도니아 일지








2019.10.29


내일. 아침 일찍 오흐리드를 떠나는 날.

오늘. 티라나로의 이삿짐을 싸는 날.

오흐리드는 이번 떠남에서 뭔가 가장 환상을 품고 기대를 많이 하던 곳이다.

천사같이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과 토미는 농구를 하고, 나는 아이들을 옆에 앉혀 놓고 그림 그릴 줄 알았다.

매일 돗자리와 도시락을 챙겨서 나무가 우거지고 조용한, 투명한 물이 흐르는 조용한 호숫가 구석에 자리 잡고

토미가 좋아하는 무릎베개를 해주면서 멍하니 하루를 보내거나 책을 읽고, 낮잠 자고, 평화롭게 지낼 줄 알았다.

시골 동네를 지나다가 일손이 필요하면 거들면서 시간을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서울과는 다르게, 다른 유럽 도시들과는 다르게. 그렇게 순수하고 평화로운 곳에 동화될 줄 알았다.

매일 듣기 싫어도 뚫린 귀에 들리는 근처 이슬람 사원 두 곳에서 하루 5번씩은 하는 듯한 기도와 노랫소리.

보기엔 풍경과 어우러져 예쁘지만 연탄 같은 매연을 뿜은 말이 좋아 올드카. 일명 똥차들.

꼬맹이만 빼고 모든 이가 피우는 미친 담배의 연기.

매일 땔감을 때어 집에서도 몸에 훈제 냄새가 배어나는, 동네에 가득한 스모그.

지나가는 나에게 아파트 위에서 물을 뿌리던 5살도 안되어 보이던 아이들.

나를 손가락질하고, 얼굴이 넓적하다는 몸짓을 하며 엄마에게 마구 웃어대던 8살도 안되어 보이던 여자아이.

길을 물으니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재빨리 도망치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피자집 화장실에서 기다리다 내가 들어가니 들어가려다 인상 구기며 피하는 여자아이.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내 인생 모든 여행 중 처음 겪어보는 어떤 무지, 혐오의 시선과 행동들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마스크를 쓰면 반응은 더 격해진다.

마스크를 쓰는 나를 보고 담배 물고 연기를 연거푸 내뿜으면서 소리치고, 손가락질하며

악귀라도 본 양 혐오하는 사람들.

혀를 끌끌 차고 맙소사! 하며 질색하는 사람들

놀랍다.

내가 오흐리드라는 곳으로 온 것은 내가 본 1~2 편의 일부에 불과한 희귀한 오흐리드 다큐를 보고서.였다.

먼지 가득한, 삶으로부터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서울의 방구석에서 아주 잘 편집된 다큐만 보고,

그 다큐 속에서 찰나의 벼룩만 한 모습을 내 생각이 바통을 이어받아

아주 잘 상상하고, 다시 편집하여 만들어 낸

한 편의 아름다운 오흐리드 삶을 기획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곳의 이런 부분들이 내가 나고 자란 한국과 다르지 않다.

아니 사실, 아주 놀랍게 똑같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내 생각대로 살고, 행동했을 뿐인데

왜!?

보편성에 어긋나는지.

적대감, 의문과 늘 마주했다.

몸이 태어나고, 자라고, 내가 속했던 곳에.

같은 피부, 같은 국적을 사진 사람들이 나를 보던 시선과 이곳에서의 이것이 전혀 다르지 않다.

이런 시선처럼 오흐리드가 그렇다.

시선에 가두고, 감시하고 다름에 칼같이 반응하는 모습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과 동일해서 씁쓸하다.

다만 난 너와 가까워,라고 나와 상징 짓는 사람들에게서 듣고 받은 말과 시선보다는

불필요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냥 겪으면 되는 것이 더 낫다면 낫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나를 사랑해 준 수많은 멍돌이들과 노을, 해돋이, 해넘이, 구름과 사르르 다독여주던 숲.

눈만 마주쳐도 주름 가득 지어 인사를 건네주고, 받아주던 따뜻한 노인들. 이 고맙다.

이곳에서 많은 것이 바뀌고 깨어진다.

다시 올까? 는 모르겠지만

아직, 여전히 '나'라는 생각에 갇혀 그들의 시선과 행동을 불편해하는구나.

불편한 것들에 대해 불만을 갖고, 경계 짓고, 그들의 에고를 그들 개인의 것으로,

나와는 다른 것으로 구분 짓고 있구나.

너와 나를, 좋고 싫음을 경계 짓고 있었구나.라는 발견과

그런 것들이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결국 다른 사고를 깊이, 오래 할 수 있었던 곳임엔 틀림없다.

오흐리드가 아니었으면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결국 내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였으면 싶은 내 마음이 지어낸 모자람이

이 길 위에서 제대로 된 선생들은 만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Macedonia Ohrid) 마음이 지어낸 좋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