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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Feb 02. 2021

(Albania)
살던 나라와 많이 닮은, 알바니아

알바니아 일지







2019.10.30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어 지금까지의 여정 중 발품과 손품을 가장 많이 팔고 긴장하며 기다린

오흐리드에서 티라나로의 이사.

전날 몇 번이고 확인을 하고서도 믿을 건 종이 쪼가리와 여행사의 '말' 뿐이라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최대한 온갖 기운을 짜내어 이른 새벽. 버스가 출발하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 와중에 몇 년을 함께 하며 묵묵히 짐을 담고 끌어 준 그린 트렁크의 바퀴가 빠지고야 말았다.

그간 얼마나 무거웠던 걸까.

늘 조용히 얌전히 곁을 걷고, 맴돌던 멍돌이들이

오늘은 떠나는 날인 줄 아는 건지 격한 하이파이브에 발밑에 벌러덩 배를 까뒤집고 누워

계속 예뻐해 달라고 낑낑거리고 난리다.

송아지만 한 녀석들이.


우려와 같지 않길 바라지만 우려와 같이 떠날 시간이 되어도 차가 오지 않고

(버스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정류장도 틀리 대고, 표기가 아무것도 없는, 정류장도 아닌 깃발 아래 모여 출발이라니)

엊그제부터 종료된 썸머타임 탓에 여행사에 그렇게 확인을 했건만, 늦어짐마저 불안하지만.

더 이상 고민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일교차 심해 아침에 5도 미만인 오흐리드 호숫가에서 발발발 떨고

멍돌이들에게 마음을 기대고 기다린다.

정말 오지 않는다면 여행사가 문 여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해결하고 스트루가에 가서 하루 한 대 있다는 차를 타면 되겠지 뭐. 별거 있나.

감지덕지하게도 15분 늦게 도착한 작은 벤.

우리뿐인가 싶은데 정류장이 아니라 하던 lcwaikiki에 서서 두 명을 더 태우고, 스트루가에 정차하더니

트렁크도 없는 미니버스만 한 승합차에 승객과 짐을 옮겨 다시 달린다.

마치 시골 마을버스처럼 알바니아에 진입해서도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달린다.


알바니아에 진입하자 풍경이 달라진다.

처음 하늘에서 발칸을 보고 반한 풍경이 이곳이었던가?

연신 꼬불꼬불 굽은 아찔한 산길인 만큼 산의 풍경과 그 아래에 길고 좁게 흐르는 강의 풍경에

졸린 눈을 크게 뜨고 하나의 돌멩이라도 놓칠세라 내내 깊이, 바쁘게 눈에 담는다.

티라나로 접어들자마자 마치 홍대나 명동처럼 보이는 혼잡한 풍경. 달리지 못하는 차.

학교가 끝났나 보다. 여기가 그런 곳인가 보다. 했는데 센터에 하차하고 보니

(원래 하차 장소는 티라나 국제 버스 터미널인데 센터로 가는 사람은 인당 2유로씩을 추가로 받고 내려준다)

웬걸.

온통 바글바글, 꽉꽉 막힌 인도와 차도.

아 뭐지! 낯선 곳에서의 이 복잡해서 어지럽고 눈이 빙빙 도는 익숙한 느낌은!

그렇다. 유럽에 진입한 후 처음 보는, 서울에서 매일 만나던 '혼잡'이다.

대륙을 넘어와서 늘 뚜벅이며 한산한 길을 매일 마주치면

얘네는 수도인데도 인구밀도가 이렇게 낮아?

하며 본의 아니게 자동 반사적으로 떠나온 곳과 비교를 하기 마련이었는데

이곳은 서울이다. 그리고 하노이다.

그래서 맨몸이라면 뭐 이 정도쯤이야.라고 할 익숙한 혼잡과 아수라장이다.

단지 우리에겐 온 살림이 담긴 배낭과 트렁크가 쥐어졌을 뿐!


트렁크 바퀴 때문에, 그리고 사람 하나 지나갈 곳 없는 여기서 걸어가긴 무리일 거 같아

처음으로 자진해서 택시로의 이동을 선택했는데 우리의 짐을 다 실을 만한 벤 택시가 없다.

포장되지 않고, 벽돌도 아니고, 돌이 빠지고 요상한 요철이 많고, 사람 많고

하노이의 인도를 걸을 때만큼 좁은 길에 민폐 끼치며 파고들어 심 카드를 구매하고,

바로 보이는, 총 들고 앞을 지키는 은행에 들어가 알바니아 돈을 인출하고 이동한다.

(은행 ATM 수수료가 무려 7000원!)

산 넘어 산, 이게 사서 고생이지!! 하하하하하

얼굴은 인공 미소 가득.


이렇게까지 예약 전날과 당일까지도 답장이 늦는 집주인은 처음이고 어제부터 답이 없어 조금 불안하지만

대략적 위치는 알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전진뿐.

여기가 서울인지 해외인지.

서울인데 서양인들이 가득 채운 것 같은 이 도시.

서울처럼 차가 우선이라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쌩쌩 달리며 멈추지 않는 차들 곁과 사이.

발 디딜 틈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미여 드는 사람들.

그곳에서 완전 민폐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

한복판에서 리어카 끌 듯 트렁크를 끌고 가는데 바퀴 하나가 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냥 이제 '정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하하하하하.

무슨 오늘 해탈에 이른 것 같은 웃음을 뿜고 있다.


드디어 귀하신 집주인님이 답장을 보내어 연락이 닿아 집주인님 동생을 만나 티라나 월세집 입성.

그런데 별것 따지지 않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를

몇 번이고 문의하고, 답을 받고 정확하게 확답을 받은 부분이 설명과 다르게 없었고 사진과도 다른 집.

이건 뭐지.

게다가 집이 청소가 덜 되어 있는지 우리를 세워 두고 잠시 기다려 달라면서 청소도구 정리, 카펫 정리,

빨래 정리를 이제서야 하고 있다.

집이 사진과 다르고, 오래되고, 부서지고, 곰팡이 슬고, 지저분하고 뭐 이런 것엔 그냥 있을 수 있지만

거짓은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어이가 없을 뿐 화는 나지 않는다.

기다리고선 설명과 다르다 했더니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일단 안녕.


지금까지 이 집에 왔던 경로가 스치면서 어찌할까...?

우선 다른 집이 없다면 여기 있어야 하는 건데.

티라나는 유독 집도 없고, 있다면 너무 비싼 집들이 많아서 지금까지의 여정 중

선택과, 예약에 걸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티라나인데.

이 망가진 짐을 끌고 나가 토미 고생시키고 싶진 않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합리화하고 

한 달을 비비적 버텨볼까.

생각해봐도 배만 고프고, 정신이 멍하니 일단 바나나 먹고 머리에 밥을 주자.

바로 의자에 자리 잡고 노트북만 꺼내어 집을 뒤져보는데 집들이 다 100만 원 훌쩍.

그 와중에 전엔 보이지 않던 집이 하나 이 근처에 보인다.

지금 예약이 가능한지, 공과금 부분 등과 이것저것 메시지를 보내보는데 다행히 바로 답이 와서

대화를 빠르게 진행한다.

그리고 지금 집주인에게 취소를 어떻게 해 줄 것인지 동시에 대화를 주고받으니 배고픈데 아주 돌겠다.

얼렁 자리 잡고 앉아서 맥주나 퍼먹고 싶은 심정이라 내가 지금 잘 판단하고 있는 건지

당 떨어져서 판단 오류가 나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지만

단순하게 생각해서 바로 옮기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아. 그 집은 또 어찌 가나...

길이 또 무포장에 무법천지에 공사판.

헛웃음만 나지만 그래도 옮길 집이 있는 게 어디야!

낄낄대면 걷고 있는데 센터에선 보이지 않던 벤 택시가 스탑.

택시 불신과 불호의 나는 내내 긴장하며 길을 보여드리니 잠시 후 안전 하차시켜주신다.

다행히 그 구역이 티라나로 가기 전 유기농 식품점이 즐비하여 원래 예약한 집에서도 장을 보러

그쪽으로 갔어야 했던 구역에 있는 집이다.


정말 작은 원룸. 간만에 서울에서 살았던 집을 만난 느낌.

영어교사라는 집주인은 만나서부터 정중하고 친절하고 따뜻하다.

아주 몸으로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는 모습이 달랏의 에릭 같은 집 모습이라 그리운 익숙함에 웃음이 난다.

다만 배가 고프면 눈이 돌아가는 나는 배가 너무 고픈데 우리의 반응이 좋으니 더욱 신나서

집을 소개해 주시는 집주인의 설명이 너무 길어진다.

정말 고맙지만, 그리고 정말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말해줬으면. 싶다.

배가 고파서 잘 들리지 않아요. 미소 짓는 입가의 떨림이 보이지 않나요...?


짐만 내려놓고 바로 복잡한 길을 뚫고 티라나 중심과 다리를 건너 중국집을 찾았다.

여태 다니면서 보였던 단체 중국인들은 바로 눈이 마주쳐도 말이나 웃음도 없었는데

먼저 앉아 있던 한 테이블에 있던 남자 여자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히더니

중국인 이야?

아니 우리 한국인.

아. 근데 중국 말할 줄 알아?

아니 그거밖에 몰라!

허허허.

그러고 자리에 앉는데 밖에 있던 중국인과 주방에 있던 사람들까지 나와서 한국인 구경을 한다.

티라나에는 동양인이 마케도니아보다 더 드문가 보다. 싶다.

메뉴를 보니 중국에서처럼 요리가 다양하지 않다.

채식 요리, 수쓰가 있냐 하니 완전 채식요리는 없다고 한다.

그럼 볶음밥, 볶음면을 굴소스와 계란 등 없이 채소만 넣어서 줄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 된다 하신다.

주방, 직원 모두 모여 우리의 주문을 받고, 확인한다.

양이 부족할 것 같아 더 시키려는데 둘이 먹기엔 이미 양이 넘친다고. 해서 혹여나 기다려 음식을 받으니

예쁘고 작은 음식이 나왔다.

저는 먹깨비랍니다.

아기 때 미역국 10그릇 먹고, 국민학생 때 햄버거 20개를 먹고, 피자 2판,

삼계탕 3~4마리에 밥 말아먹는 것은 기본이었던 먹깨비랍니다.

이걸로는 양에 차지 않아요. 하고 싶지만 말을 모른다.

양이 많지 않은 건 늘 겪는 일이라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고 맛도 별로였지만

누군가가 해 준 쌀 음식, 동양의 쌀 음식이 그리웠기에 먹어도 주린 배를 기분으로 채우고 나와

마트와 동네 탐방을 살짝 돌아본다.

와, 유기농 채소 과일이다. 그리고 잎채소라니!!

얼마나 그리웠던지.

우선 내일 식사인 우리의 과일을 잔뜩 사들고 낮보다 더 복잡해지고 매캐해진 공기를 가르며

역시나 맥주와 음주, 음주 집 안 청소와 이삿짐 풀기로 종료하는 오늘이다.

아직 에어비앤비 전 집과의 마무리가 남아 있어 찜찜한 기억의 조각이 있지만

고민하고 걱정해서 될 일도 아니고 내일이라는 날이 와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다시 생각만 해도 울컥하게 하게 하는 오흐리드의 멍돌이들.

차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기본이라 당연히 필 줄 알고 내내 걱정, 긴장했는데 담배 한번 피우지 않던

티라나행 기사님.

낑낑 걸으며 심 카드 가게를 찾을 때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있으면서 도와줄 것이 있냐고 물어보시기에

심 카드 찾는다 하니 여기저기 직접 물어봐 주시고 빠이. 했는데

그 가게를 찾아내어 다시 알려주러 오신 눈물 나게 푸근하고 따뜻한 아저씨.

마술처럼 나타나 준 고양이 버스 같은 택시 아저씨.

속은 집 아파트 대문을 나서는데 문을 내내 조용히 잡아주던 아가씨.

급한 상황에 바로 답장을 주고 집을 빌려준 지금 집주인.

굴 소스니, 뭐니 다 빼고 채소 볶음면과 볶음밥, 채소 요리 주문을 선뜻 만들어 내어 준 중국집 사람들.

그리고 오늘도 함께 많은 파도타기를 한 토미.

모두 팔레민데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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