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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Feb 08. 2021

(Albania)
아무것도 모를 때 만족스럽다

알바니아 일지







2019.11.03


오흐리드에서 큰 일교차로 덜덜 떨다가, 티라나에서의 첫날에 다양한 일들을 만나고

이래저래 이사 정리를 하다 보니 다른 도시들 이사 후의 회복 속도보다 여기서의 회복력이 많이 떨어진다.

108배도 며칠을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뭐 체력보다도 마음이 매우 귀찮은 상태다.

귀찮을 때 밥은 거하게 차려내어도 가장 핑계 삼아 빼기 좋은 것이 108배.

며칠을 내내 몇 번씩 통 청소를 한 세탁기와 만능 손으로 밀린 빨래를 하고, 좁은 집에 널고, 말리고

몇 달만에 만나는 유기농 식품점, 일반 마트를 모두 섭렵하며 고마운 채소, 과일들을 부지런히 사들여 

먹고 있다.

매일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이었던 유기농 푸른 잎채소와의 만남이 가장 감격스럽다.

다만 물가 자체가 수도라서. 인 이유도 있겠고

가공품, 공산품, 유기농 식재료들은 죄다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수입품이라서

맥주를 제외하고는 핀란드보다, 핀란드만큼의 장바구니 물가다.

오흐리드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는 배추가 나오는 것을 보고 떠나왔는데

이곳에도 작지만 배추가 보여 냉큼 집어와 김치를 조금 담가놓았다.

일어나 과일 먹고, 쉬다가 밥해 먹고, 쉬다가 자고의 반복.

이렇게 빈둥거리는대도 하루가 12시간으로 바뀐 듯 짧다.

농구쟁이 토미가 손꼽아 기다린, 본 시즌에 돌입한 NBA도 보고

포르투갈 포르투 다음으로 두 번째 살 도시를 생각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멍. 하니

체력과 마음을 회복 중이다.


요즘 공기 측정기의 성능이 의심스러운 날들의 연속이다.

첫날 초미세와 미세의 수치가 50~100 사이. 한국과 비슷한 수치라

마케도니아보다 공기가 좋지 않은 곳이구나. 포기하고 단념한 공기인데

매일이 10 이하를 찍는 날들이다. 다른 오염 요인들이 많겠지만.

무슨 핀란드냐? 싶어 내내 측정기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보곤 한다.

간신히 찾은 한 사이트에서만 공기, 토양, 수질 등의 통합자료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자료를 

볼 수 있었고,

실시간 공기는 측정소 조차 없는 곳이었는데

이 얼마나 고마운 날들인가.

그리고 내내 쨍쨍하던 해의 도시 오흐리드에서 내내 비와 비구름이 점령한 우중충의 도시 티라나로 오니

몸은 삭신이 쑤셔도 눈과 마음은 매일 파티 중이다.


그런데 큰일은 이곳 작은방에서, 작은 창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도 실시간으로 가슴을 들쑤셔 놓아서

맥주가 맛이 없음에도 자꾸 창밖을 스크린처럼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대로 싶다는 것이다.

바로 앞 초등학교 아이들이 매시간 떠들어대는 소리와

체육관에서 배구부, 농구부가. 밖의 인조잔디에서 축구부가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의 아주머니는 매일 빨래를 너는데 비가 와도 걷지 않고

다음 날 보면 또 다른 빨래가 널려 있다.

이웃의 빨래가 뭐인지, 지금은 농구부 연습시간인지 배구부 연습시간이니

작은 틈으로 지켜보며 낄낄거리는데 갑자기 조관우 님의 노래 '늪' 이 생각났다.


빨랫줄에 수건, 빤쮸, 옷가지 몇 개만 널어놓아도 낮은 포복으로 이동해야 하고

두 명이 동시에 동선 이동을 할 수 없는 작고 좁은 집이지만

불편해서 더 깊게, 집중에서 순간순간을 느낄 수 있는 티라나에서의 삶이다.

단지 포르투갈로 이동 전 비쉥겐 일수를 더 채우고자 넣었던,

여정에 넣었던 나라 중 정말 탈린보다 아는 것 없이 들어온 나라다.

정보가 없어 내 안에 나만의 '알바니아 티라나 편' 다큐를 찍어놓지 못했고

기대와 아는 것이 없어 내 안에 나만의 '알바니아 티라나 플래닛'을 엮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새롭고, 의외이고,

그래서 모든 것이 고맙고, 만족스럽다.

고개를 쭉 빼고, 들어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 폭을 오가는 구름과 색이 한순간도 같지 않음을 내 좁은 시야 속에 넣어 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무아.라는 느낌.

나.라는 것이 없는 텅 빈 느낌.

그래서 모든 게 비워지고, 가득 채워질 수 있는 온전하고 충만한 행복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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