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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Mar 05. 2021

(Albania Tirana)
아침이 빠른 티라나

알바니아 일지





2019.11.10

티라나의 날씨는 소위 내 취향 저격.이다.

구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하늘색 하늘과 회색, 검은 하늘이 쉴 새 없이 선수 교체가 된다.

학교 뒤 건물 중 맘에 드는 오래된 아파트의 꼭대기 층 아주머니는 매일 빨래를 너신다.

그런데 비가 와도 매일 그대로 두신다.

널고 집을 비우셔서 매일 모르시나 싶은데 다시 빨래가 바뀌어 있다.

나가서 비를 맞고 싶은 날도 있고, 안에서 고스란히 바라보고 싶은 날도 있는데 

오늘이 바로 안에서 그러고 싶은 날.

그렇지만 식물 섭취 인간은 과일, 채소를 이틀에 한 번은 잔뜩 봐 놔야 생존하니

오늘도 똑같은 옷, 똑같은 신발, 똑같은 가방, 똑같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티라나 살이 처음으로 가장 일찍 나선 날이다.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어딘가를 무작정 길게 뚜벅이고 싶을 때엔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기 전에 움직여야 함 때문이다.

오전 7시~8시에만 나서도 텅텅 비어 있어 우리 세상인 양 거리낌 없이 척척 뚜벅이기 좋다.

어스름한 푸른 새벽을 만나며 나선 티라나 조용한 도심 탐험은

나서자마자 북적북적 빵 빵빵 앙~

이곳의 시간은 하노이만큼 빠른가 보다.

다녀 본 몇 안 되는 유럽 대륙의 도시들 중 이토록 빠르고 바쁜 생활과 시간을 본 적 없다.

첫 만남부터 그랬던 티라나였어도 주말 아침은 그렇지 않겠지. 했다.

걸을 수 없는 많은 사람, 차, 매연, 가득한 담배 냄새로 인해 깨작깨작 구경하던 도심.

구석구석 궁금했던 도심의 골목을 사정없이 걸어봐야지.라는 포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게 순간이다.

이미 차, 사람 모두 우리보다 빠르게 도심을 장악하고 있다.

하노이다. 이곳은 하노이다!

모든 예상이 빗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낯선 곳을 찾아 걸어 다니고 

그러므로 인해 삶의 매 순간이 다채로워지는 것이지만 

낮과, 밤과 다름없는 주말의 아침 산책을 억지 억지 1~2시간쯤 채우고 포기하고야 만다.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집에 가서 낮 맥주나 마셔버리자! 라며

유기농 마트에 들러 과일과 채소를 사고 마지막 장을 보는 마트에 들어가는 순간

우르르르릉 쾅쾅 쾅!!!!

갑자기 검고 요란한 하늘이 혹시나. 싶더니

계산을 하고 나서자마자 검은 구름이 하늘을 점령하고 우박에 가까운 소나기가 거리를 점령했다.

그냥 나설까. 싶다가 우리 네  손 가득 무거운 일용한 양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이제 티라나의 날씨와 조금 아는 사이가 되었기에 기다려 보기로 한다.

다행히 지하에 있는 마트에 가림 막이 있어 둘이 서서 기다리기엔 안성맞춤 공간이 있다.

이런 각도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달랏 다딴라 폭포의 바위 밑에서 폭우를 맞고 기다리는 때와 또 다른 

도심 가림막 안에서 바라보는 폭우.

어디서나 비는 참 예쁘다. 풍요롭다.

5분이면 그치려나 싶은데 10분. 15분 길어지는데 그 순간들이 시간이 멈춘 듯 재밌다.

오늘도 이런 신나고 행복한 일을 하루 중에 만나니  마음 찌푸리고 흐린 날 있어도

살아갈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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