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Mar 14. 2021

(Tirana)
곰, 늑대, 개구리는 못 만나고

알바니아 일지







2019.11.20


다음 이사 갈 곳은 포르투갈이다.

보통 2달 전에는 월세집을 예약해 놓는데 숙소 물가가 무진장 비싼 포르투갈의 숙소 물가 덕에

첫 행선지 포르투 이후의 행선지를 계속 변경하고 다시 찾아보고 하는데도 참으로 비싸고, 또 없다.

떠나기 전 서울에서는 포르투 다음 도시를  라구스로 정했으나 버스 이동이 꽤 버거운 나에게는

7~8시간의 버스 탑승 시간, 점점 그 긴 이동시간이 압박으로 다가와 

비제우. 라는 도시로 변경하고 이제 집 예약해야지 싶어 보니 그곳은 더 심해서 

월 200 미만의 집은 아예 없다.

뚜벅이들이 맨몸이라면 몰라도 이삿짐을 끌고 갈 수 없는, 역시나 차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이 없는 곳만 제외하고는 모두 핀란드 집값보다 비싸다.

한국에서 매년 월세집 찾을 때처럼 참 그렇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스페인으로 갈까 다시 틀었다가 우선은 포르투갈에서만  있고 싶어 포르투갈 전역을 눈으로 답사하다가

드디어 12월의 월세집을 구했다.

생리통에 죽네 하면서도  한동안을 이 포르투갈 집 걱정과 계획으로 허비하는 오늘과 매 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아 괜히 예민함이 돋은 요즘이다.


안 되겠다. 이럴 땐 나무를 보러 가야지.


걸어서는 산 초입까지 1시간 30분쯤 걸린다는 다이티 산을 걸어서 가기로 한다.

물론 오늘도 아침 식사 바나나와 함께다. 무거워도 항상 매우 고마운 존재.

비가 오락가락하는 오늘도 역시 차가 넘쳐나는 길을 따라 걸으니 점점 걷는 사람이 적어지고,

베트남처럼 유독 젊은 사람들이 많은 티라나 중심과 다르게 

흰머리 노인들이 가득 해지는 풍경으로 바뀐다.

비가 제법 오니 기분은 좋은데 벗었다 썼다 하는 마스크와 이래저래 피하는 큰 공사 현장이 피곤하고

바나나,  배낭이 무겁다.


완전 외진 산 밑 동네로, 허허벌판 같은 곳으로 왔음에도 삐까번쩍한 대형 커피 매장이 있는 것이 

아직도 볼수록 신기하다.

다이티 산은 대부분 케이블카를 타고 왕복하며 산 위의 카페에서 전망 보고, 

커피 마시고 내려오는 것 같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으려 했건만 홀랑 젖어버릴 만큼의 거센 폭우가 갑자기 퍼붓는다.

다들 비가 올 줄 알았는지 사람은 매표소 직원과 우리뿐 인 것 같다.

아무래도 산을 타고 내려오는 건 무리일 듯싶어 무려 왕복 800 레크의 거금을 들여 탑승한 케이블카.

무슨 이름을 그렇게나 남기고 팠던 건지 케이블카 유리를 온통 낙서로 긁어놓은 데다, 

폭우로 앞이 깨끗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 틈새로 본 산의 풍경은 또 처음 만나는 산의 다른 모습이다.

온통 바위산에 강인하게 뿌리내린 작은 나무들이 촘촘히 녹색과 노란색, 주황색을 뽐내며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거대하다. 그 생명력이 존경스럽고 아름답다.

이런 종류의 지출은 꽤 아깝게 생각하는 나지만. 

얼마를 주고도 여기 아니면 볼 수 없는 하나뿐인 풍경이다.

케이블카로 쉽게 올라와서 그렇지 산은 산이다.


올라오자마자 계절이 바뀌었다.

바들바들 떨며 발을 디디고 바라본, 그렇게 만난 풍경은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과 안개 덕에 꿈속 같은 모습.

그러나 역시 말 타고, 총 쏘고, 우아하게 차 마시러 오는 산인 건지 

등산로.라는 것이 전혀 없고 길. 모양도 없어 당황스럽지만 더듬더듬 걸어 들어가니 

산속에 초원이 펼쳐져 있다.

어릴 때부터 산을 무척 자주 만났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알프스나 몽골, 티벳, 이런 곳의 영상과  책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런 신비한 모습!

늘 동경하고  사랑하는 운해가 가득한 산을 올려다보며

 ' 저 속에서는 저 안개를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었다.

이런 곳에서, 오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줄은

 케이블카에 내려 오들오들 떨며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알 수 없었던 일이다.

비를 홀랑 맞고 꼬질한 내 행색에도 불구하고 이런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음에. 

이런 색을 마음에 들일 수 있게 해 주는 내 눈에 저절로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풍경이다.

이런 폭우라면 시내는 물난리가 났을 텐데 흙과 풀이 만든 스폰지 같은 적당히 푹신한 땅의 감촉도 

얼마 만이고 어찌나 신비한지.

어떻게든 흙을 찾아다니지만 언제부턴가 걸음의 90% 이상이 아스팔트와 블록을 밟을 뿐이었는데 

어릴 때 우리 집 작은 흙마당, 앞 산, 뒷산을 만난 기분이다.


고개를 쭉 빼고, 눈을 크게 뜨고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는데

사람들 놀이용으로 기르고 있는 말들이 싸 놓은 똥이 천지 빼까리.

사실 흙으로 보이는 것들이 죄다 엄청난 양의 말 끙아라서 이미 풀에 싸 놓은 똥들을 이미 밟았겠지만 

눈에 보이는 똥이라도 대충 피해서 걸으면 된다.

산책로는 없는 산인데 옆에 큰 도로를 내어 놓았다.  

서바이벌도 하고 산속 오토바이 이런 것도 하는 듯하다.

비가 더 오기 시작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마치 그림처럼 도로 중간중간에 타이트하게도 

끙아를 많이 싸 놓았다.

안 그래도 양이  많은데 커브길에 차 한번 지나가면 똥이 그대로 튈 것 같은 예감에 

한참 떨어진 옆에서 걷는데

왜 예감은 이럴 때 찰떡같이 들어맞는지. 

조용했던 숲 속에 쌩. 하니 차가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토미. 더 구석으로 피해!

하며 토미가 피하는 것을 보고 바로 몸을 밖으로 트는 순간.

철퍼덕.


철퍼덕이라는 소리가 정말로 철퍼덕.이라고 들리는 건 처음인 듯하다.

그 흔하다는 새 똥도 한번 맞아본 적이 없는데 무슨 복이 많아서 한 아름의 말똥이 튀어 

까만 바지와 까만 운동화에 갈색 그림을 그려놓았다.

화가 나지 않는다.

다만 안 그래도 오늘, 내일 하는 나의 고마운 6년 차 단벌 운동화와 여행 내내 두벌 중 한 벌인 바지.

이 똥 튄 녀석들을 데리고 내려가면 냄새가 무지 날 텐데.

나의 추동용 단벌 추리닝 바지 빨면 이틀은 외출은 못 하겠구나.

오늘은 식당에 들어가 밥 먹고픈데 이 냄새로는 못 가겠지?

이런 생각만 머리를 가득 메우고 주머니에 있는 휴지를 찾아 대충 털며 허허. 거리고 있는데

똥 튀긴 럭셔리 차 주인인 듯한 여자가 슬며시 다가와 사과를 한다.

뭐라 따질 수도 없고, 그럴 맘도 없어 괜찮다고 웃으며 보내버렸다. 

화내 서 짜증 내서 이미 벌어진 일이 바뀌는 게 있던가.

운동화의 매쉬 소재가 참 좋은데 그 사이로 말똥이 속속들이 박혔다.

냄새가 어마어마하다.

어쩔 줄 몰라하는 토미가 집에 가자고 내내 동동거린다.

이런 날, 이런 풍경을 두고, 게다가 똥까지 튀었는데 바로 가긴 억울하니 

이왕 튄 거.  똥이 비에 씻기고  마를 때까지 걷자 토미.


말을 그리했음에도  찜찜하고 썩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나무가, 안개가, 비가 그들의 아름다움으로 똥을 닦아주고 마음을 토닥여준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뭔가 건물이 보이는데 혹시나 싶어 보니 안내 사무실이다.

너무 춥기도 하고 똥 묻은 손이라도 닦고 싶어서 들여다보니 문이 꽁꽁 닫혔는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사람이 나와서 화장실을 쓰게 해 준다.

손을 닦고 바지와 운동화에 묻은 똥을 조금이나마 물에 쓸어내리려다 운동화가 아예 홀랑 젖어버려서

냄새나고 홀랑 젖은 운동화가 되었다.

안내해 준 사람이 화장실로 찾아와서 잠시 들렀다 가라 하기에 

똥내를 가져온 것이 미안하여 연신 미안함을 전하고 따라 들어가니

현지인 차로 인해 똥 튀어서 오히려 미안하다며 작고 낡은 히터 하나로 맞이해준다.

짤막 짤막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90% 이상은 알아들을 수 없는 산 설명을 들으면서

크고, 넓고, 야생동물들이 많이 사는 아름답고, 오래된 산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본 곳이 꼭대기인 줄 알았더니 정상이 따로 있다고 한다.

다시 옴은 기약이 없어 오늘 오르기로 하고 인사를 하고 나선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니 등산로라고 표기된 이정표를 드디어 발견했지만

길은 없고, 무너진 건물과 바베큐와 음주의 흔적과 쓰레기 더미와 오를 수 없는 길만 발견했을 뿐이다.

사업과 재미에 초점이 맞춰진 산, 입구에 찢어진 이정표가 하나만 있던 산,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 똥 튀어도 화가 나지 않던 마음이 꿈틀거린다.

내려가야지. 거대 부호처럼 왕복으로 끊은 케이블카를 타고.


스코페 이후 먹지 못한 생맥주를  티라나에서는  한 잔을 해야지. 싶은데 

생맥주를 파는 곳엔 고기나 피자집.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 

오늘은 뭐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도 귀찮다. 그래 봐야 감자튀김. 먹고 싶지도 않다. 

한국에서도 청양고추가 없는 음식은 먹기가 조금 고통인 나.

홀랑 젖고, 담가져서 그런지 뜨끈한, 청양고추와 쑥갓과 깻잎을 잔뜩 넣은 버섯 김치전골에 

막걸리가 생각난다.

항상 산을 찾아가면 홀랑 젖어버리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겪는 토미에게  맛난 외식을 먹이고픈데 

뭐가 없다.

뭐가 없고, 춥고, 배가 고프니 그냥 집에나 가버리자. 싶다.

어라. 집에도 식량이 다 떨어졌네.

혹시나 싶어 지도에서 찾아 둔 생맥주 파는 식당이 집 뒤쪽에 있다고 나온다.


더 걸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정말 이번엔 토미 먹고픈 걸 시키고, 

감자튀김이라도 부탁해봐야겠다. 는 심정으로 어두침침한 골목을 뚫고 들어간 식당.

가로등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거리에 있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릴 적 캔모아. 여성 친구들이 좋아하던 카페의 인테리어가 생각나는 뭔가 아기자기한 컨셉의 가게다.

가게 분위기와 조금 성향이 달라 보이는, 마지 심슨의 언니들처럼 꽤 허스키한 목소리의 주인아줌마께 

생맥주가 있는지 확인하고 혹시나 채소 요리가 있는지 물어보며 메뉴를 살펴보니

마케도니아에서부터 늘 궁금했지만 먹지 못했던 발칸의 전통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가지구이와 파프리카 구이라는 이름의 음식.

오흐리드에서도 흔히 보이던 음식이다.

오흐리드에선 고기가 들어가고 고기가 없다면 육수가 들었었는데 이곳은 아니란다.

양이 적은 이곳 음식들의 성격상 배를 채울 것은 기대도 하지 않고

맥주 한잔 싹~ 비우고 집에 과자라도 사서 들어가자. 며 마음 놓고 기다리는데

아주 예쁘고, 귀엽고, 향도 좋은 음식 두 그릇이 앞에 놓인다.

360 레크. 약 3600원. 버거나 샌드위치 가격도 안 되는 가격에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대접받다니.

당연히 양도 적고, 맥주도 그냥 그런 차가울 뿐인 맛이었지만 현지식을 생맥주와 함께 먹었다는 것이

정말 큰 만족이다.

티라나는 감자칩 한 봉지에 2000원이 넘는 도시다.

멋진 음식에 생맥주 두 잔 포함하여 만 원.

귤. 외엔 저렴한 것이 없는 티라나에서 가장 저렴함을 느낀 순간이다.

먹깨비의 마음과 식욕은 계속 메뉴를 뚫어져라 보며 더 갈망하지만 가능한 메뉴는 둘 뿐이라 

아쉬움을 큰 만족으로 남기고 

다시 다른 세상인 듯 컴컴하고, 소외되고, 조금 우울한 길을 밟으며 돌아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Albania Tirana) 이보다 화려할 수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