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일지
2019.11.28
11월 27일.
여전히 흔들거리는 몸과 마음으로 마지막 밥을 지어먹고, 짐을 싸는 떠나기 전날 밤.
또 한 번의 지진이 났다.
어제 여진까지 이틀 동안 벌써 4번의 지진.
집주인은 'Good shake~!'라며 돈 워리와 함께 웃음을 보낼 뿐.
오늘 짐을 싸고 이대로 또 대피할 수도 있겠구나.라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그런가'의 마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는다.
잘난 척하는 생각은 그리했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는 흔들리는 몸과 생각들.
여진 없이 맞이한 고마운 새벽.
한 달 티라나를 만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작은 보금자리를 청소하고 나선다.
티라나에 와서 트렁크의 모든 바퀴들이 덜렁해지고, 몇 년을 함께 누비던 녀석 하나는 바퀴가 모두 사라져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만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다.
마지막에 먹고픈 것을 아껴가며 혹시 모를 차비를 조금 넉넉히 남겨두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몸과 기계와 표정으로 대화를 해야 했던, 여유롭고 따뜻한 눈빛의 기사님의 도움으로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저렴하고 빠른 공항버스를 탑승한다.
1시간마다 있는 버스는 사람을 가득 태우고, 역시나 출발 시간이 10여 분 지나고서야 출발한다.
알바니아 도로 사정을 대충 알기에 이러다 촉박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데
너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작고 깨끗한 공항에 도착한다.
마지막에 차비가 어찌 될지 몰라 남겨 놓은 나름의 거금 레크로
거대 부호처럼 유기농 비건 초콜릿을 왕창하고
좋아하는 알바니아의 독수리가 새겨진 달랑 남은 1레크 하나를 기념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카운터가 열릴 때까지 앉아 있으니
여기서도 모두 지루할 틈 없이 우리를 보느라 바쁜 듯하다.
보통 쳐다보면 그냥 쓱 미소 짓고 마는데 며칠 대자연의 손아귀에서 흔들린 탓인지
반응하고 싶지 않지 않을 만큼 조금 지친다,
드디어 티켓팅을 하며 짐을 부치는 순간.
다시 심하게 흔들리는 공항.
몇 초의 또 강한 지진이다.
후아. 지진이 이렇게 잦은 현상이란 말인가?
지진입니까?
항공사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으니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집주인과 같은 말은 한다.
굿쉐이크, 돈 워리!
기다리던 사람들의 트렁크가 넘어지고, 사람이 엎어졌는데
항공사 직원들은 잠시 일어나 서류를 잡았다가 아무렇지 않게 바로 다음 일을 이어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이게 지진이 일상인 나라의 삶의 모습이구나. 싶다.
항상 5층 이상의 건물에서 지진을 겪었기에 1층이면 조금 울렁임이 덜하지 않을까? 어떨까?
그게 쭉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증까지 해결하고 떠난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포르투행 비행기를 타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지막 티라나의 하늘은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평화롭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번 지구 월세 살이 떠남에서 에스토니아의 탈린보다 더 아무것도 모르고 갑자기 결정해서 오게 된 나라.
알고 보니 지진의 근원지이고 없는 정보에서 그나마 보이는 정보에는
무법이라느니 마피아라느니 가난과 이념, 문화에 대해 이것저것 악담이 많은 나라.
그러나 그 속에 잠시 들어앉아 보니 핀란드 다음으로 마음이 평온했던,
그래서 꼭 다시 월세 살이 하러 오고 싶은
나에겐 마음의 여유와 눈에 기쁨을 담아 주었던 나라.
마지막 3일간 6번의 지진으로 다시 오겠다는 강력한 바람이 쏙 고개를 숙였지만
나의 망각의 힘으로 다시 만날 것만 같은 알바니아.
이곳의 모든 존재들이 그간 큰 아픔 없이, 고통 없이, 지금처럼 그럼에도 평화롭고 조화롭게 행복하기를.
망각의 순간에 다시 이 따스함과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