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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Mar 28. 2021

(Albania Tirana)
지진. 다시 만나다

알바니아 일지










2019.11.26


티라나에서의 날이 3일 남은 오늘.

여전히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누운 괴로운 새벽.

누운 침대가 흔들린다.

어지러워서. 라기엔 이미 한번 경험한 좋지만은 않은 느낌.

깊이 자는 토미도 느꼈는지 자기 침낭으로 나를 덮고 감싼다.

멍하니 누워 요람처럼 흔들림이 느낀다.

이래도 되나. 싶게 흔들리는 집.

지난번 오흐리드에서 느꼈던 지진의 본지. 우려했던 알바니아에서의 지진이다.

멀리 오흐리드에서도 강력하게 느껴보고도 그 진원지 온 우리.

매일 대비하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쉽게 잊혀지는 법.

처음엔 매일 긴장하고, 머리를 쭈뼛 세우며 미어캣처럼 감을 살피던 하루 이틀이 지나자

흔들리지 않고, 날씨가 아름다운 티라나에 흠뻑 취했다.

강력한 망각이 있어 살 수 있는 게 우리다.

자다가 조용히 죽는 게 소원이다.라고 건방지게 노래 부르며 다니더니 

자다가 이렇게 요란하게 죽는구나. 느껴지자 깨어난 느낌이다.

아기자기한 집주인의 취향으로 꾸며진 침대 맡 모든 소품을 죄다 한 곳에 치워놔서 그나마 다행이다.

흔들림이 멈추기도 전에 밖이 웅성웅성 소란스럽게 난리다.

흔들림이 멈추자 밖을 보니 작은 학교 터에 이 가득 찬 동네 사람들.

아, 저기로 벌써들 대피했구나.

이게 말로만 듣던 지진이 잦은 나라의 모습이구나.

보고도 겪고도 아직도 몽롱한 꿈인 듯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쯤. 이 되었다.

어찌할까. 고민을 잠시.

오흐리드에서와는 비교도 안되게 느낀, 누군가 옆에서 격하게 흔들어 깨워 일어난 느낌 정도기에

바로 미리 준비해 둔 여권, 돈, 카드, 티켓이 등 보조가방과 노트북, 핸드폰, 라우터 등만 배낭 하나에 넣어

단벌 옷을 주워 입고 계단을 통해 건물을 빠져나가 학교에 들어섰다.

늘 우리를 뚫어져라, 뒤돌아서까지  구경하는 사람들이지만 \

오늘만큼은 일제히 피난 나온 이방인을 한번 슬쩍 쳐다보고 잠깐 놀라고선 서로 뭉쳐서 있기 바쁘다.

역시 신기한 이방인보다는 '생존' 이 단연 큰 관심사다.

모두 모여 이야기하고, 여기저기 전화하기 바쁜데 

철저히 이방인인 우리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지진이 났다는 것 말고는 알 수가 없다.

물어본 건 집주인뿐이라 연락해 보고, 기사도 검색을 해 본다.

그냥 우리가 본능적으로 알아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여진이 없다면 이 사람들 다 들어가면 들어가야겠다

말도 통하지 않고, 글도 읽을 줄 모르고,  들을 줄도 모르는 타지에서의 자연재해.

지난 9월 오흐리드에서 겪었던 지진과 또 비슷한 곳이 진원지다.

이번엔 6.4도의 강도라 한다. 

지난번엔 5.6도의 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진 지대인 이 지역에서도 거의 100년 만의 강진이라고 한다.

잠이 덜 깬 건지, 춥고, 멍하고, 이 와중에 조금 똥도 마렵다. 

이런 상황 속에 급하게 똥이 마려우면 어떻게 하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토미도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말 이 정도로만 겪어서 할 수 있는 호강에 겨운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더 큰 것이 오면 이대로 이 짐만 들고 떠나도 아쉬울 건 없겠다. 생각이 든다.

더 큰 것이 여기까지 온다면 떠날 길마저 막히겠지만.

모르는 게 약이고, 몹시도 무지한 것이 때론 이렇게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5시쯤이 되자 하나 둘 들어가고 우리도 '일단' 들어온다.

'일단' 씻고, 토미가 한국과의 일을 보는 중에도 다시 한번 가방을 싼다.

한국에 남긴 것 없이 이 짐들로 이사를 다니고 있는 우리. 

다시 피난 가방을 싸려니 그중의 반은 또 없어도 살겠다 싶다.

정전과 들어옴의 반복.

뉴스를 틀어놓고, 기사를 보며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보자. 한 시간만 더.

7시. 밥을 먹을 시간도 아닌데 배가 고프다. 

이런 속에 먹으면 체할 것 같지만 혹시나 또 떠나야 하면 굶어야 하니 

굶는 게 세상 큰 두려움인 나는 여진이 없자 또 아무렇지 않게 과일을 준비한다.

한입 먹자마자 다시 지진이다.

그리고 40분 뒤 다시...

나가자는 토미를 잠시 앉히고 조금 더 기다려보자. 고 기다리니 밖에 다시 나갔던 사람들도 다시 들어오고

이젠 여진이 없는 것 같다. 일단 괜찮은 것 같다.

모든 게 그냥 '감'이다.

이 와중에 배는 고프고, 너무 졸리고, 너무 춥다. 

이 와중에 최고의 맛 알바니아 귤과, 키위, 바나나로 배부르게 밥을 챙겨 먹고 있는데

밖이 계속 어수선하고 지진의 후유증으로 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흔들흔들 수시로 여진인 것 같아 객관성이 전혀 없어 생수통을 창가에 세워두었다. 

물이 흔들리지 않는 걸 보니 지난번 오흐리드에서처럼 몸이 느끼는 지진의 여파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자고, 다니고, 숨 쉬는 삶이 계속된다.

일단 나가서 포르투행,  바르샤바행 항공권을 출력하고, 공항버스 타는 곳을 정확히 봐 두고

그래도 여기서 예정처럼 지내고 떠나게 된다는 가정하에 내일까지의 식량을 구하러 계단을 통해 

아파트를 빠져나온다.

아파트의 여기저기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부서져 있다. 

큰 재난이라 휴교인지  똥강아지들이 깍깍대며 시끌시끌한 학교도 텅텅 비어 조용하고

거리의 분위기와 사람들은 어수선하다.

정기적으로 들른 유기농 매장 직원들이 괜찮았냐고 안부를 묻는다.

서로 짧은 영어로 안부를 살피고, 눈빛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미소로 이제 안녕을 고한다.

전보다 더 관심 집중에 뚱. 한 것 같지만 조용히 더 살피고 배려하는 사람들.

매일 크고 작은 지진과 함께 매일을 사는 사람들이라지만 본인들도 매번 놀랄 텐데 

이방인은 걱정하는 마음이 뭉클하다.

지진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는 일어나고 난 이후의 상황들이 무슨 일인지 알 수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고, 무슨 상황인지 오직 감으로만 알아야 하니 답답하다.

타지를 다니면서 늘 자유롭다. 느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처음으로 깊은 고립감이 느껴진다.

유난히 외딴섬 같은 작은 집에 들어와  TV를 틀어놓는다.

처음에는 사망자 없이 티라나의 부상자 50여 명, 진원지인 두레스 쪽이 150명 정도라더니

부상자가 줄고 사망자 수가 점점 올라간다.

주워듣기로 7층 이상이 되는 건물이 내진설계가 되어있다길래, 

아파트라면 질색을 하면서도 티라나의 집을 구할 때 무조건 고층 아파트의 고층으로 골랐다.

9월의 지진 때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낡고, 낮은 건물들이 가루가 될 정도로 바스러져 있다.

지금도 계속 몸은 지진이다.

땅을 기반으로 사는 우리 동물들.

그 기반이, 그 근본이 흔들린 후유증은 묘하고, 싶다.

일부러 돈 내고 번지 점프를 하고, 놀이 기구를 타고, 방방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고갯길 버스를 타고.

이런 흔들림과는 조금도 같지 않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잠도 못 자고 잘 곳도 없어진 많은 사람들.

그리 멀지 않은 티라나, 이곳에서는 다시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져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데이트하고, 뛰어다니며 노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지금은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지만 과거엔 먼 얘기였다.

두 달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이 나라 안에서 겪은 느낌은 뭐라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과 

이곳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추위에 물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까지 황폐해지고 가난해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마음의 허울 좋은 동동거림뿐.

그리고 떠날 날이 이제 이틀 남은 우리.

무사히 떠날 수 있기를, 오늘 아무렇지 않게 잘 잘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뼛속까지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바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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