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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Apr 25. 2021

(Portugal Porto)
안녕

포르투갈 일지






2019.12.20


쿵쿵쿵

쾅쾅쾅

지이이이잉

드륵드륵

쓰윽쓰윽

우우우우웅

우와아아아아아앙

끼익끽

쿠두두두두두둑

쿠당탕탕탕

쑤우우우우우욱


얌체처럼 늘 8시 되기 전 슬슬 시작하는 공사 소음이 

8시가 되면 내가 공사 현장의 당사자인 듯한 소음과 진동이 시작된다.

오늘은 이상하다.

여태 사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못 알아듣는 언어라 그렇지 

토미와 내가 서로 소리 높여 얘기하듯 너무도 또렷하게 들린다.

가깝다.

너무 가깝다.

옆 옆 건물이라 했는데...

명상을 하고, 108배를 하고,  신경 쓰이지 않는 척 한다.

점점 심해지는 소리. 진동은 더 심하다.

오늘은 나무를 찾아 나갈 예정이다.


머리를 부술 듯 뚫어대고 찔러대는 공사 소음도

무방비 상태로 훅, 눈코입으로 마주치는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한껏 꾸며낸 좋은 기분으로 나선 태풍같은 비바람을 뚫고 나선 길에서 만나면. 

정도가 다르지만 모든 게 무너진다.

오늘은

야! 이 XX야!!!

란 외침이 절로 터져 나와 내가 놀란다.

아마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담배로 인해 마음과  머리가 화로 터져 죽는다. 생각한다.

저렇게 아랑곳 않는 무지렁이들. 

저러고 두 발로 걷고, 옷 차려 입고, 걸어 다니고, 숨 쉬고, 먹고, 즐기는데

나는 매일 저런 존재들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코피 쏟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을 겪는 것이 분하게 느껴져 

꼭지까지 돌아버릴 것 같은 순간이다.

매일매일 참고, 아무렇지 않은 것, 조금 깨달은 척, 뭐라도 되는 척, 이해하는 척, 자비심을 갖는 척,

그런 구역질 나는 척을 하며 참지만 그 가식적인 마음이 무너지면 그냥 눈이 뒤집히는 건 여전하다.

공사고, 똥이고 뭐고 어떤 것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늘 옆에 있는 토미 때문에 화도 누르고, 짜증도 억누르며 마음을 챙겨보지만 그것도 마음의 놀이.

결국 정도가 쌓여 터지는 이런 순간은 '이성'이라고 잡고 있는 모든 걸 놓고야 만다.

자비고, 연민이고. 

매일 매 순간을 깨어보게 하는 행위나 챙김 조차도 담배 앞에서는 다 필요 없어진다.

아이를 배고, 아이를 안고, 아이 손을 잡고, 아이를 마주 보고 왜 그렇게 하는지 

이제는 단지 바라보고 그 고통을 생각하는 것. 따위조차 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것에 어떻게 저 고통을 삼키고, 내 기쁨을 주란 말인가.

나에겐 그것을 감당해내고 나를 위로할 작은 기쁨조차 남아있지 않다.

삶이 휘몰아치고, 혼란스럽고,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뿌리 없는 듯 송두리째 뽑혀버릴 것 같은 날들.

진짜 뽑혀버릴까. 두렵지만 

아예 그냥 뿌리까지, 그 뿌리의 잔털까지 뽑혀져 버려라!.

놓고 싶은 때가 잦은 요즘이다.


웬만한 집은 겪어봤다고 생각한 나.

공사 소음, 대로변의 차 소음, 사람 소음, 그것들은 모두 통달했다고 생각한 나.

오산이다.

한국의 달동네, 다닥다닥 붙은 다가구 집은 매우 쾌적했구나. 내가 호강하고 살았구나. 싶다

감히 다른 집이라고 할 수 없을 법한, 결국은 고막이  나가버린 소음, 

그리고 티라나에서 겪은 지진 때보다 더 많이 떨어진 집 안의 집기들.

샤워를 하다가 흔들리고 귀가 찢겨 발가벗고 주저 앉아버리고 뛰쳐나온 나.

낭만과 빛바랜 아름다움을 머금은 이 포르투라는 도시가 오래 머묾.으로 인해 뼛속까지 알아버린.

그런 성급한 마음.


하지만 

나무도, 풀도 많지 않은 이 도시에서

일부러 왕복 4시간을 걸어 나무를 찾아다니고 있는 이 도시에서 

아날로그하고, 빈티지한 이 도시의 대표 건물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그 속의 삶을 걱정한 그런 걱정 거리가

짧지만 그 깊숙이 삶.으로 인해 내가 그 걱정을 걱정하게 되었다.


정신이 지쳐버렸다.

몸이 지쳐버렸다.

마음이 지쳐버렸다.

지금이 지쳐버렸다.

빨리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

그 마음까지 온전히 챙기지 못하게 하는 미친 공사 속의 한 달간의 삶.


집 주인이라고 뭘 할 수 있겠는가.

깊숙이 들어오면 주민이라곤 없고, 버려진 빈집과 우리 같은 사람을 받으려고 개조하는 

이런 공사가 한창인걸.

관광세.라는 것까지 받는 포르투인걸.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주며 내 짐을 풀 수 있었는걸.

괴로운 건, 괴로운 것.


그래도.

그래도.

누군가는 겪었어야 하는 것을 내가 겪었음에 아주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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