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Apr 25. 2021

(Portugal Porto)
안녕

포르투갈 일지






2019.12.20


쿵쿵쿵

쾅쾅쾅

지이이이잉

드륵드륵

쓰윽쓰윽

우우우우웅

우와아아아아아앙

끼익끽

쿠두두두두두둑

쿠당탕탕탕

쑤우우우우우욱


얌체처럼 늘 8시 되기 전 슬슬 시작하는 공사 소음이 

8시가 되면 내가 공사 현장의 당사자인 듯한 소음과 진동이 시작된다.

오늘은 이상하다.

여태 사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못 알아듣는 언어라 그렇지 

토미와 내가 서로 소리 높여 얘기하듯 너무도 또렷하게 들린다.

가깝다.

너무 가깝다.

옆 옆 건물이라 했는데...

명상을 하고, 108배를 하고,  신경 쓰이지 않는 척 한다.

점점 심해지는 소리. 진동은 더 심하다.

오늘은 나무를 찾아 나갈 예정이다.


머리를 부술 듯 뚫어대고 찔러대는 공사 소음도

무방비 상태로 훅, 눈코입으로 마주치는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한껏 꾸며낸 좋은 기분으로 나선 태풍같은 비바람을 뚫고 나선 길에서 만나면. 

정도가 다르지만 모든 게 무너진다.

오늘은

야! 이 XX야!!!

란 외침이 절로 터져 나와 내가 놀란다.

아마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담배로 인해 마음과  머리가 화로 터져 죽는다. 생각한다.

저렇게 아랑곳 않는 무지렁이들. 

저러고 두 발로 걷고, 옷 차려 입고, 걸어 다니고, 숨 쉬고, 먹고, 즐기는데

나는 매일 저런 존재들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코피 쏟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을 겪는 것이 분하게 느껴져 

꼭지까지 돌아버릴 것 같은 순간이다.

매일매일 참고, 아무렇지 않은 것, 조금 깨달은 척, 뭐라도 되는 척, 이해하는 척, 자비심을 갖는 척,

그런 구역질 나는 척을 하며 참지만 그 가식적인 마음이 무너지면 그냥 눈이 뒤집히는 건 여전하다.

공사고, 똥이고 뭐고 어떤 것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늘 옆에 있는 토미 때문에 화도 누르고, 짜증도 억누르며 마음을 챙겨보지만 그것도 마음의 놀이.

결국 정도가 쌓여 터지는 이런 순간은 '이성'이라고 잡고 있는 모든 걸 놓고야 만다.

자비고, 연민이고. 

매일 매 순간을 깨어보게 하는 행위나 챙김 조차도 담배 앞에서는 다 필요 없어진다.

아이를 배고, 아이를 안고, 아이 손을 잡고, 아이를 마주 보고 왜 그렇게 하는지 

이제는 단지 바라보고 그 고통을 생각하는 것. 따위조차 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것에 어떻게 저 고통을 삼키고, 내 기쁨을 주란 말인가.

나에겐 그것을 감당해내고 나를 위로할 작은 기쁨조차 남아있지 않다.

삶이 휘몰아치고, 혼란스럽고,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뿌리 없는 듯 송두리째 뽑혀버릴 것 같은 날들.

진짜 뽑혀버릴까. 두렵지만 

아예 그냥 뿌리까지, 그 뿌리의 잔털까지 뽑혀져 버려라!.

놓고 싶은 때가 잦은 요즘이다.


웬만한 집은 겪어봤다고 생각한 나.

공사 소음, 대로변의 차 소음, 사람 소음, 그것들은 모두 통달했다고 생각한 나.

오산이다.

한국의 달동네, 다닥다닥 붙은 다가구 집은 매우 쾌적했구나. 내가 호강하고 살았구나. 싶다

감히 다른 집이라고 할 수 없을 법한, 결국은 고막이  나가버린 소음, 

그리고 티라나에서 겪은 지진 때보다 더 많이 떨어진 집 안의 집기들.

샤워를 하다가 흔들리고 귀가 찢겨 발가벗고 주저 앉아버리고 뛰쳐나온 나.

낭만과 빛바랜 아름다움을 머금은 이 포르투라는 도시가 오래 머묾.으로 인해 뼛속까지 알아버린.

그런 성급한 마음.


하지만 

나무도, 풀도 많지 않은 이 도시에서

일부러 왕복 4시간을 걸어 나무를 찾아다니고 있는 이 도시에서 

아날로그하고, 빈티지한 이 도시의 대표 건물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그 속의 삶을 걱정한 그런 걱정 거리가

짧지만 그 깊숙이 삶.으로 인해 내가 그 걱정을 걱정하게 되었다.


정신이 지쳐버렸다.

몸이 지쳐버렸다.

마음이 지쳐버렸다.

지금이 지쳐버렸다.

빨리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

그 마음까지 온전히 챙기지 못하게 하는 미친 공사 속의 한 달간의 삶.


집 주인이라고 뭘 할 수 있겠는가.

깊숙이 들어오면 주민이라곤 없고, 버려진 빈집과 우리 같은 사람을 받으려고 개조하는 

이런 공사가 한창인걸.

관광세.라는 것까지 받는 포르투인걸.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주며 내 짐을 풀 수 있었는걸.

괴로운 건, 괴로운 것.


그래도.

그래도.

누군가는 겪었어야 하는 것을 내가 겪었음에 아주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Portugal Porto) 12년 단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