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일지
2019.12.29
매일 타는 공기.
매일 하얀 하늘.
여기가 서울인지, 다른 곳인지 인지하는 내 의식의 정체마저 의심되는 날들.
이틀에 한 번은 몇 시간이고 목적지 없이 걷던 습관이
덕분에 핑계 좋게 이제는 3일에 한번 꼴이 되었다.
오늘은 그래도 조금 덜 하다. 걸어야지.
가자 가자. 하던 까스텔로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걷자.
바로 위로 보이는 곳이 꼭대기인데 빙 둘러서 걸어가야 한다.
보통은 시내에서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나 차를 타고 올라가는 곳이라 한다.
공장처럼 큰 병원 부지를 지나니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 길이 두둥.
체력이 똥이다.
아침 식사 바나나님을 등에 매고 공복에 올라오니 바나나가 돌덩이 같다.
돌계단 하나에 숨을 몇 번을 내쉬며 올라오니 산 위의 나무는 어디다 다 갖다 버렸냐. 싶게
산 위가 그냥 거대한 성당 부지.
하늘과 둥둥 하얀 구름에 닿을 듯 산꼭대기에 세워진 성전.
그보다 더 광활한 주차장.
성당을 보고, 주변을 둘려 걷는데 차가 너무 많고 걷는 길이 좁아 한 바퀴 돌고 만다.
오늘 공기가 이 정도라 이 정도라도 걸은 걸 위안 삼자. 싶다.
슬금슬금 뚜벅이며 삐까번쩍한 성당과 주변의 공원, 호텔, 주차장 부지를 빠져나오니
뭔가 흙냄새가 난다.
포근포근한 흙냄새를 따라. 사뿐사뿐한 흙의 촉감을 따라 걸어 내려오니
내내 번듯한 돌길을 걷다가 운동화가 잠길 듯한 그대로의 흙길, 물길, 숨통같이 트인 그대로의 숲길.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자연이 놓여있다.
순례자가 걸었던 그 길에 우연히 합류를 한다.
아주 먼 그 옛날부터 지팡이와 낡고 작은 짐 보따리만 들고 이 길을 묵묵히 걸어냈을
간절한 누군가와 만나고 있는 듯한 묘하고 물렁거리는 느낌.
신을 찾아 걷다가 자기 안의 신을 발견했을 오래 전의 누군가들처럼
내 안의 간절함 탓인지 그냥 주룩. 한다.
이런 절실함으로, 이런 간절함으로 먼저 지나간 그들과
포르투갈에서 처음 만난 온통 그대로의 자연으로 가득한 공간.
가쁘던 눈과 숨이 안정되고, 온전한 만족으로 입가와 주름진 눈가에 잠시의 반짝임을 준
그래도 포르투를 떠나 까스텔로에 오길 잘했다. 싶은 또 하루.
내려와 또 그렇고 그런 사람 사는 세상과 만나더라도
내일 또 괴롭다고 투덜대는 마음을 만나더라도
이런 반짝이는 공간 하나만으로 지금 이 순간은 나에겐 완벽한 세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