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일지
2020.01.04
카스텔로에 도착한 건 23일. 오자마자 한창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었고
또 며칠이 지나 바로 맞은 연말과 연초.로 인해 식량조달로 먹고살기 바쁜 날을 보냈다.
늘 시내가 한적해 마치 트루먼쇼. 같은 영화 세트처럼 예쁘고 사람 적고 조용한 이 도시의 연말 오전의 마트는 마을 주민들이 몽땅 모인 듯 북적거린다.
이방인이 사방에 널린 포르투와 달라 우리는 그 속에서 매우 눈에 띄게 합류하여
식량 조달을 해 먹고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들, 도착해서의 일들을 생각하며 심란해지기도, 허무해지기도, 무기력해지기도 하며
노을과 달이 몹시 아름다운 연말을 덜덜거리며 조용히 보낸다.
언제쯤 동상 없이 살아보려나.
갑자기 베를린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해 버렸다
늘 가고 싶었지만 넣지 못했던 베를린을.
한국에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우리라. 5월까지 1년을 채우자를 9개월에서 놓은 우리라.
경비 때문에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새로 나오는 것보다 싸잖아.
언제 가보겠냐.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어차피 한국 돌아가면 집도 없는데!
한국을 떠날 때와 똑같이 막가는 마음가짐으로
주문하기 어려운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에서 채식 버전을 주문하는 기분인 라이언 에어로
베를린행을 구매해 버렸다.
그리고 입 벌어지는 숙소 가격에 절망하다가 화장실 문이 없이 온통 개방된 숙소의 예약까지.
매일 공기가 더더욱 안 좋아지고 해도 몇 시간 나지 않거나 구름이 잔뜩 해를 가리고 있어 더욱 춥다.
해 앞에선 마냥 숨어 들어가고 싶고 비와 먹구름이 좋은 내가 이렇게 해를 기다릴 줄은 몰랐다.
해가 이렇게 따스한 줄 몰랐다.
손발이 퉁퉁.
게으름 폭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행 중 가장 늦은 기상이다.
추워서...
너무 추워서!!!
한국보다 온도가 한참 높은 포르투갈.
살아봐야 안다.
겪어봐야 안다.
내가 겪지 않은 것은 단지 복잡한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앎' 일뿐이다.
손가락, 발가락이 터질 듯이 아프고 내내 덜덜거리느라 내장까지 쪼그라드니
짜증과 날카로움이 바들거리고 쫄리는 심장을 통과해 토미의 심장을 찔러대는 말투가 계속된다.
한국에선 아침과 밤을 제외하곤 따로 있어 혼자 겪으면 될 일을
내내 같이 있어 온갖 감정들을 마주하니 어쩌겠는가.
이럴 땐 걸어야지
퉁퉁 부은 손발로 탄내를 가르며 바닷길 산책에 나선다.
집에서도 보이는 해안선.
해안선 풍경을 꽉 막은 조선소와 많은 공장들이 바다로 가늘 길을 막아놓고
바로 앞의 바다를 공장부지를 돌고 돌아 일부나마 트여있는 바다를 만난다.
짧지만 거센 파도가 치고, 오동통 갈매기가 쉬고 있는 바다 한가운데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돌길을 걸으며
그대로의 바다를, 바람을, 물을, 친구를 만나니 내 존재가 사라진다.
바다가 직각으로 끼어 들어간 강을 산책하고 새를 만나고 조약돌 모래를 만나
단단하던 마음이 조금을 말랑말랑해진다.
해가 지고 더욱 추워져 밖보다 추운 집에 들어오면 다시 원점이지만.
자책과 자학과 멍함과 포기와 희망을 반복하며 더 내려놓고 더 포기하기를 더 '나'가 없어지기를.
아무것도 붙잡고 바라지 않고 다 내려놓고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