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일지)Vietnam-HoChiMinh

모두 내 탓

by 한지연
201905150.jpg copy.jpg

Ho Chi Minh


첫 장소를 베트남으로 정한 건

익숙함 속에서 편한 마음으로 워밍업 일상을 지내다가 유럽으로 넘어가고 싶어서였다.

하노이를 가장 사랑하지만 기관지 취약자가 보름을 묵기엔 공기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작년에 다녀왔던 달랏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호치민은 그랬다.

냐짱, 달랏을 방문할 때 잠시 스치는 경유지였다.

그러나 이번 호치민 환승 때에는 잠시 호텔에 묵어야 했다.

경유 시간이 거의 10시간이 넘어서 우리의 상태로 노숙을 할 수 없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호텔의 위치.

공항 밖의 팍슨으로 걸어가면서 하노이는 비교도 안되는

사나운 오토바이와 차가 널린 대로변을 건너야 했던 경험으로

가깝지만 걸어서 밤눈이 어두운지라 캐리어를 끌고 그곳을 건너기가 어렵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무료로 픽업해주는 아주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다.

그런데 호치민 공항의 숙소들은 하루 전에 요청으로 해도 도착하면 게이트 앞에서 다시

전화나 메시지를 보내야 데리러 출발하는 시스템이었다.

공항 앞에는 차를 오래 대기해 둘 수 없는 것이 이유라 하였다.


혼자 배낭만 매면 어떤 길을 헤매도 걸어서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누군가.

그것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곳에서,

유심이니, 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느니 이런 것에 취약한 아날로그 인간이

난생처음 이렇게 큰 캐리어와 큰 배낭과 보조가방 등을 정신없이 들고

아수라장 호치민 공항 밖에서 연락을 취하고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더 바싹 긴장이 되는데

체력이 이미 바닥을 치고 있고, 밀려드는 졸음에 힘들었다.

그러나 짐 빼는 당일에 한국 호텔에서 묵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는 것이 비용 면으로도,

일정상으로도 번거롭고

달랏에 도착하면 아침부터 일정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 짐 빼고 바로 인천, 다음 호치민, 다음 날 아침 달랏 일정이 맞는 한가지 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에

유일한 방법이라 어쩔 수 없었다.


며칠 한숨도 자지 못한 정신으로 호치민행 비행기에 올라 과일식과 맥주 두 캔을 먹고

그러고도 잠을 자지 않고 내내 느슨해진 긴장의 끈을 미세하게 놓지 않고 공항에 도착했다.

온통 머릿속에

저 짐을 들고 어떻게 다니지?

후기를 보면 픽업 요청을 해도 데리러 오지 않고, 만나지 못해서 결국 택시를 타고 갔다는 후기도 많던데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호텔에 가야 하지?

택시를 안 타려면 걸어가야 하는데 그 난리 통에 내가 캐리어를 들고, 비몽사몽 토미를 데리고

야밤에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이번에도 베드 버그 물리면 어떻게 하지?

정신없이 혼자 머릿속으로 떠들어대다가 무사히 착륙.

짐을 찾고, 토미가 환전과 유심을 해결하는 동안 온통 호텔과의 만남에 스탠바이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미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을 치고 눈과 다리가 풀릴 대로 풀려 국제선 게이트 10번으로 나가

유심을 이용하여 호텔에 픽업 요청을 보냈다.

넘쳐나는 사람들, 넘쳐나는 픽업 행렬, 택시 호객, 극도로 싫은 넘쳐나는 담배 냄새!!!

만나지 못하면 몇 분만 기다렸다가 가버린다는 호텔의 이야기와 후기 때문에 더욱 긴장해서

답장을 기다리며 목을 잔뜩 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들도 있던데 하고 보니 우리 이름은 없었다.

어떤 여행에서도 누군가 내 이름을 들고 기다리게끔 하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저건 여행사나 뭐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렇게 2분 정도가 흘렀을까?

호텔에서 답장이 왔다.

5분 내로 온다더니 10분이나 15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도 그 시간에 10번 게이트 앞에는 베트남 사람들과 서양인들만 있던 터라

호텔 기사님이 오셔도 나를 금방 찾겠지 생각하고 안심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차에 누군가 블루투스로 연락하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먼저 호텔 이름을 말하니 인사를 하며 맞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확인 메일을 보자고 한다.

그래서 바우처와 메일 교신 내용을 보여주니 오케이! 하며 캐리어를 끌고 우리를 이끌었다.

다행이다. 만나서!

이제 호텔에서 긴장 풀고 베드 버그만 안 물리면 다음날 드디어 달랏이구나!

이런 마음으로 긴장이 순간 사르르 풀려버렸다.

차도를 건너며 우리를 캐어해주고, 무거운 짐을 끌어 주어서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뿐이었다.

아. 이런 픽업 서비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마음도 함께.

벤 이 서 있었고, 그 안에 무거운 우리의 캐리어를 싹싹 넣어주고

토미의 배낭을 받아서 뒷좌석에, 그리고 나도 뒷좌석에.

토미가 내 옆에 앉으려 하자 조수석으로 태운다. 좁다면서.

그러고 보니 꽉 찼다.

아. 이제 드디어 출발하는구나. 긴장 빠빠!!

문을 닫아주더니 갑자기 기사 속에는 다른 사람이 탔다.

오잉!

창문 밖을 보니 우리를 데리고 온 사람은 다시 공항 쪽으로 가는 듯했다.


톰! 저분은 이렇게 만나서 테우고, 또 다른 사람들 데리러 가나 봐.

응 그런가 보네?


새로 탄 기사님께 신 짜오! 하자.

대답이 없다.

무작정 출발을 하더니 갑자기 주차장 구석으로 멈춰서 돈을 내란다.

잉?

조수석에 앉은 토미에게 스몰 달러 원, 투 달러라고 한다.

택시 타면 덤터기 씌우거나, 호텔 픽업 서비스도 웃돈을 요구한다더니 이게 그건가 보다 싶어

내가 무료 서비스 아니냐, 돈 내라는 말을 못 들었다.라고 하자

영어도, 베트남어도 아닌 말투로 손가락질하며 위에 한글, 영어, 중국어 등으로 적힌 안내문을 가르치며

뭐 공항세라느니, 주차 비라느니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말도 안 된다고 하는 와중에 토미가 복대를 열어 베트남 동을 주려고 찾고 있었나 보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기사가 동은 안되고 달러만 된다고 하더니 돈을 채가더니 자기가 보겠다고 한다.

말도 안 된다 내놔라 하고 이상하다, 내려야겠다고 그제서야 느낀 순간.

톰이

이 **뭐야!!!!

돈을 도로 낚아와서 넣자 불을 꺼버린다.

비너스 호텔 맞냐 전화하겠다 했더니 혼나 블라블라 편안한 얼굴로 떠든다.

바로 짐을 챙겨 내려버렸다.

그래서 공항에서 숙소는 버스 타고 다니는데 픽업 기사가 저렇게 뒷돈을 받는구나. 이걸 당해보네

짐을 내리고 컴컴한 주차장에 덩그러니 내리고도 화가 나거나, 놀랐다기보다는 그 정도의 생각.

그 뿐이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안되면 진짜 걸어가야겠다. 이 숙소 안되겠네 이러면서

다시 휴대폰을 꺼내서 메일에 접속한 순간.


토미가

이런 ****!!!

왜?

그 ** 돈 빼갔어!!!

엥??

돈을 어떻게 빼가?


달러와 유로, 50만 동만 빼갔다 했다.

정확히는 따져봐야 되지만 대략 4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인듯했다.

메일을 열어보았다.

유심 연결 상태 때문인지 방금 들어온 메일에는

기사가 도착해서 찾고 있는데 네가 없다.

종이에 이름 써서 들고 있다. 는 내용이었다.

종이에 이름 써서 들고 있다......


그 와중에 토미는 온갖 욕을 뱉어댔고, 여기저기서 택시라며 호객 자드리 은밀히 다가왔고

그제서야 뭔가 당했다 생각됐다.

일단 진짜 호텔 기사님이 돌아가기 전에 다시 게이트 10번으로 가야겠다.

도착해서 다시 조금 기다리니 누군가 나와 토미의 이름을 프린트 한 종이를 들고 계셨다.

그렇다.

애초 택시를 신뢰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아 타지 않는 내가

그래서 주의할 필요도 없었던, 그래서 알아둘 필요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내가

이런 공항에서의 흔하다는 수법을 겪은 것이었다.

멍하니 호텔에 도착해서야 사기를 겪었고, 정확히 40만 원 정도가 없어졌다는 것이 파악되었다.

그제서야 자책감과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남들은 이 나이에 대책 없다 하지만

한국에 어떤 남김도 없이 얼마 되지 않는 보증금만으로 결심한 여정의 첫 경유점에서.

6번의 베트남 여행 내내 친절한 숙소의 사람들이 직접 데려다준다, 불러준다 하는 어떤 교통도 믿지 않고

오직 내 다리와 버스로만 다녔던 내가.

다들 베트남에서 뭔가 하나씩 당했다지만 그런 일 겪은 적은 베드 버그 물린 것이 유일한 것이었던 내가.

어떤 것도, 심지어 나조차도 믿지 않는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것이 힘들었고

그 돈이 우리의 예산에 아주 큰 부분이었음이 힘들었고

그의 자신감 있는 역 확인의 모습에 전혀 의심을 하지 않고 따라갔다는 것이.

그리고 인터넷이 잘 안 터졌던 것조차도 내 탓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다.

토미는 자기가 돈을 환전 후 나누지 않고, 어두워서 돈을 모두 노출했고,

순간 빼앗겼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으로 힘들어했다.

나도 그랬다.

내가 그랬더라도 토미가 왜 거기서 돈을 꺼내가지고!!!

라는 마음이 마음의 구석에서 잠깐 손을 들기도 했다.

돈만 안 꺼냈더라면!!!


그런데 아니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이미 따라가서 그 차에 탔다는 것 자체가 시작이었으니

돈을 뜯기지 않았다면 우리를 고스란히 보내주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가방을 들고 내렸는데 트렁크를 갖고 차를 내달렸더라면 그 안에 모든 우리 살림을 털렸을 리라.

털 돈이 없었다면 어딘가 이상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으리라.

이렇게 토미를 위로하고 수업료 냈다 치자. 웃으며 재우고도

정말 최저가 숙소만 돌아다니지만

유난히 시트에 코딱지가 많이 붙어있던 숙소에서 비닐을 깔고 그대로 웅크려서

코딱지와, 죄책감으로 날을 지샜다.

그 사람에게 화는 나지 않는다.

오직 나에게만 화가 날 뿐이었다.

아무리 몇 주 날을 새서 짐을 꾸리고, 떠날 준비를 하고 멍하니 이동했을지라도

내가 더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엮였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오직 비어버린 예산 만이 실화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두 내 탓이었다.

그 일당의 탓도 아니고, 호텔의 탓도 아니고, 토미의 탓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중에서야 도착한 메일의 '이름을 들고 있겠다' 는 문구가 각다귀처럼 심장과 머리에 박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날 바로, 그리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뭔가 이 사람에게 빚진 것이 있나 보다.

내가 어디서 얻었던 수익이 이 사람이나 가족에게 피해를 주었었나 보다.

생각을 하면서도 하루 중 어느 순간에는 문득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 자책감이 다시 심장을 공격한다.

자꾸만 따끔 거린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나보다 더 금전적으로 힘든 사람이겠지.

그러니까 그런 일을 하며 살겠지.

내가 얻은 어떤 것이 그 사람의 어떤 것을 빼앗았겠지.


그런데

이미 지난 이 일의 모든 생각의 끝은 하나다.

누구의 탓도 아닌,

탓을 하려면 오직 내 탓이라고.

분명 큰돈이기는 하지만

그 돈이 다소 익숙하다고 방심했을지 모르는 길에서 더 깨어있으라는 수업료라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나도 또한 행복했으면 한다.

나도 한국에서의 일상이 행복했다면 도망치듯 떠나지 않았을 테고

그 사람들이 행복했다면 남을 속이고, 공격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테니...

작가의 이전글(타이베이 일지)Taiwan-Taip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