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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03.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Vietnam-Dalat) 달랏의 고양이 버스






달랏에 온 지 벌써 1주일.

오늘은 철저하게 관광객 놀이를 하려고 다짐했다.


새벽 시장을 둘러보고 싶은데 토미의 새벽 기상은 무리라 아침 시장을 둘러보고, 

시장과 빅씨 마트에서 아침 과일을 구하고,

도시락을 싸서 다딴라 폭포에 가는 것이 큰 계획이다.


혼자 여행에서는 현지에 도착하면 항상 다음 날 새벽 시장을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인데

아침잠이 많은 토미와 함께 일 때에는 7시가 최선이다.

토미를 힘겹게 깨워 시장에 나서니 벌써 큰 시장은 파한 듯하고, 

이제 슬슬 정리하면서 소매상들의 장사가 열리는 듯한 분위기다.

광란의 밤과, 바쁜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름다운 꽃밭과 잔디밭에 널린 

온갖 쓰레기들만이 말해주고  있는 대체로 걷기 수월한 만큼 한산한 시장.

너무 한산하고 정리하는 분위기라 먹고 싶은 과일을 구할 수 없어 무려 아침 7시 반에 오픈하는 마트!

달랏의 유일한 오아시스 빅씨 마트로 향했다.

아침부터 쨍함과 검은 구름이 오락가락 변화무쌍한 달랏의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걷는 것은

(물론 호숫가의 인도에서만이다!)

엄청난 행복이다.

오픈하자마자 음악과 직원들과 함께 입장한 마트에서 아침에 먹을 과일을 고르고,

운 좋게 아침부터 갓 쪄 나온 달랏 왕밤 고구마를 다딴라 점심용으로 포장하여 돌아온다.


달콤한 과일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바로 아래 리엔호아에서 반미짜이 4개를 포장해서 

집 뒤편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다딴라에 내려주는 현지 버스를 타기 위함이다.

작년에는 숙소도 시내에서 벗어난 산속 숙소에서 로빈 힐까지 걸어간 후 케이블카를 타고 

선원, 그다음 미쳐버릴 듯한 관광차 무리와 걸을 길 없는 산속 도로, 폐가 죽을 듯한 매연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다딴라로 이동했기에

이번에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고, 도롯가를 걷지 않고자 버스 탑승에 도전한 것이다.

두근두근.

걷는 것 외엔 모든 것이 아직도 낯선 나란 사람.

다행히 버스가 정차해 있었고, 안에 기사님과 차장님이 계셔서 

다딴라!

오케이~

바오 니여우 띠엔?

7,000~

깜언!


하노이의 버스보다는 낡고, 냐짱의 버스보다는 깨끗한 달랏의 버스가  시내를 돌고, 사람을 태우고 내리고

짐까지 태우고 내리더니 우리를 다딴라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웬일로 이렇게 한산하대?

명소와 관광지가 힘든 나를 소위 멘붕에 빠뜨린 이곳이 이렇게 한산할 수가 없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가?

뭐 어쨌든 난 좋다.


다딴라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작년 폭우와 쨍함이 반복하던 시각에 한국인 관광객이 다딴라에 왔다.

산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는 롤러코스터를 타보고 싶기도 하지만 

비가 많이 온 후라 꺼려져 걸어 내려가고 싶어 했다.

놀이기구도 무서워하는 남자는 이 날따라 놀이 기구에 도전하고 싶어 했다.

안전해 보이지 않고, 이상하게 촉이 좋지 않지만 

처음으로 이런 것에 도전하고 싶은 남자의 말을 들어주기로 하고 부실한 쇳덩이에 엉덩이를 안착하였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빨리빨리 내려보내려 하는지 

앞사람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안전거리가 확보된 것인지 남자와 여자를 내려보낸다.

남자를 앞에 태우고 뒤에서 운전을 하던 여자는 

마침 앞에 사람들이 내려가지 않고 멈춘 뭉텅이를 멀리서 발견하였다.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려가야지!

그런데 고장이다.

브레이크가 고장이다!

쾅!!!

앞 차에 박았고, 뒤에 오는 차에 박혔다.

여자는 남자의 뒤통수에 이마를 세게 박치기했고, 뒤에 오는 차에 뒤통수를 박치기 당했다.

교통사고였다.

머리가 퉁퉁 붓고, 눈도 붓고, 광대뼈와 이까지 얼얼하지만 내려와야 했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촉대로 안 탔다면 이렇게 박지도 않았을 텐데

이 남자는 왜 하필 오늘 이걸 타고 싶어 했을까.

왜 이렇게 고장 난 것을 날 태웠을까.

왜 저 앞에 가던 놈들은 롤러코스터를 범퍼카처럼 멈추고 있었을까.

왜왜왜!!!!!!

너무 아파서 엉엉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웃건 펑펑 울었다.

혹시나 하고 거울을 보니 광대도 퍼렇게

입술도 퍼렇게

눈도 퍼렇게

스머프처럼 퍼렇게 퉁퉁 부어있었다.

달랏에서 베드 버그에까지 물렸던 여자는 꿈에 그리던 달랏이 

약간의 강력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하는 슬픈 전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폭포들을 제치고 다딴라에 꼭 다시 오고 싶었다.

사랑하는 산과 폭포. 

그 아픈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그 아름다움이 꼭 다시 오라고 이끄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 하고 싶었던 걸어서 내려가기를 하고 싶었다.

와! 역시나!!!

사람도 없고, 쨍한 하늘을 아름드리나무가 적당히 가려주고, 

눈도 푸릇푸릇, 코도 푸릇푸릇, 땀구멍도 푸릇푸릇.

다시 오길 잘했어. 다시 오길 잘했어.

폭포를 한동안 바라보다 폭포 앞 간이 카페에서 맥주를 구입하고

도시락 반미짜이 두 개씩과, 고구마 3개씩, 맥주 2캔씩을 먹으며 신선놀음을 하고 있으니

그제서야 12시가 넘어가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제 내려가 볼까?

일어나 제2 폭포 쪽으로 내려가려 하는데 하늘의 해가 갑자기 숨어들더니

내려가지 말아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시 발길을 돌려 1폭포 쪽에서 깨작거리며 놀고 있던 때!


우르르 쾅쾅 쾅!!! 번쩍번쩍!!!

또 비가 오려나보다!

조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여전히 폭포 곁을 어슬렁거리는데

보통 비가 아니다.

구멍이 뚫린 듯 그냥 물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비가 오기 시작하자 사라졌는지 그곳에 남은 이라곤

베트남 불자 단체 대여섯 명과 노란 머리의 서양 여자, 그리고 우리 둘, 반짝이는 간이 카페뿐.

먼저 불자 옷을 입은 단체가 숨어 있는 바위 틈에 우리도 함께 숨어들어 밖을 보았다.

행복했다.

정글 같은 나무와 폭포, 바위, 흙에 둘러싸여 있어서 행복했고

거기다 폭우까지 쏟아져서 미칠 듯이 행복했다.

운동화에 물이 차서 양말과 운동화 사이에서 발꼬락이 첨벙대고 있어도 최고의 순간이다.

한국을 떠나오기를 잘했어, 다시 다딴라에 오길 잘했어!!

종일 이렇게 이곳에 있어도 좋겠어!


그리고 오늘은  촉대로 2폭포 쪽으로 내려가지 않기를 잘한 일이었다.

아무리 산과 비가 좋다지만 신나게 내려갔다가는 어떤 일을 겪었을지, 

어떤 일을 겪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을지...

쏟아붓다 곧 그치겠지 싶었던 비가 그렇게 1시간, 2시간.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흙물이 범람했던 곳에 조금씩 돌길이 보이기 시작하자

불자 단체는 함께 온 동무들이 우산을 들고 구출(?) 해 가기 시작했고

우리도 조금 더 기다리다 배낭 속 작은 우산을 꺼내들고

우산이 없는 듯한 서양 여자와 함께 우산을 쓰고 계곡을 빠져나왔다.

시크한 듯  책을 꺼내다, 셀카를 찍다가 어쩔 줄 모르던 여자는

우산을 함께 쓰고 가자고 하자 아이처럼 좋아했다.

하노이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미국인으로  휴가차 왔는데 여기서 2시간째 갇혀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오길 참 잘했어.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가 분명히 있을 법 한데

비가 더 그칠 때까지 다딴라 입구 독점 식당에서 공심채와 맥주를 먹고 내려가 내린 곳에서 기다려본다.

지나가는 버스를 손짓하여 세우니 친절하게도 반대편에서 기다리란다.

잉?

반대편은 도롯가 낭떠러지 옆인뎁쇼~!!!

그렇다.

이번엔 겪고 싶지 않았던 갓길도 없는 도롯가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관광버스와 공사 트럭, 대형 차들이 앞을 씽씽~~

아. 정말 싫어...!

그렇게 15분쯤 기다렸을까. 

버스 기다리다 황천길 가것다 싶은 그때 개인 봉고인 줄 알고 쳐다보고 만 핑크색 미니카 한 대가 선다.

돌아가는 버스!

투 시티?

끄덕.

천사 같은 핑크색 버스에 천사 같은 기사님이 홀딱 젖은 두 이방인을 무사히 시내로 이동시켜 주신다.


마치 오늘이 처음 시작되는 것처럼 다시 흙 구름이 걷힌 파란 하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지만 발은 운동화와 한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샌들로 갈아 신고

이 기분이 사그라질세라 다시 관광객 놀이를 이어간다.

쑤엉흐엉 호수를 반대편으로 돌아보고, 

넓고, 탁 트인 빅씨 마트 광장 난간에 걸터앉아 현지인 틈에 맥주와 고구마, 과자를 먹고,

시장, 호아빈 광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집으로 와서

맥주와 고구마, 과자를 먹고  빠듯한 일정을 보내고서야

오늘의 관광객 놀이를 마친다.


오늘 느낀 더할 것 없는 완전한 행복감이 나와 연결된 모든 존재들에게도 전해지기를.

오늘 쑤언 흐엉 호수 곁에서 메인 채, 묶여 달리는 말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나의 즐거움 전에 형상이 다른 또 다른 나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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