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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05.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Vietnam-Dalat) 이방인이라서




역사가 깊은 달랏의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빨래와 바스러질 것 같은 베란다 나무 문과 구름이 함께 보이는 풍경이 되었다.

아직도 오전 6시면 바디알람에 자동 기상하여

토미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전날 사다 모셔 둔 과일이 있다면 먹고, 없다면 바로 시장이나 마트에서 모셔와

아침 식사를 한다.

오늘은 수박 고르기 장인인 내가 고른 잘 익은 수박과

애플슈가 고르기 장인이 고른 토미의 석가가 아침식사.

점심은 지난번 잘못 사두었던 찹쌀밥을 처치하기 미션.

물을 조금 덜 넣으니 꼬들꼬들 식감이 좋아져서 먹을만했다.

번역기를 다시 돌려가며 일반미를 사놨으니 다음 밥은 더 먹을만할 것이다.

해가 쨍쨍하면 빨래를 말리고, 사람은 드라큘라처럼 응지에 숨어있다가

비가 올 듯 검정 구름들이 밀려오면 그제서야 사람은 외출 준비를 한다.

다딴라에서 담가버린 운동화는 며칠째 마르지 않아서 군내가 장난이 아니다.

더 말려야 하지만 문을 잠가야 하므로 다시 후퇴한다.

외출 준비라 봐야 세수도 하지 않고,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옷만 주워 입고 설렁설렁 나선다.

또 낮 맥주가 당긴다!

지난번 버스정류장에서 봐두었던 고구마튀김을 잔뜩 사 들고,

달랏 인근 시내를 모두 뒤져 찾아낸 병맥주 판매 가게에 들러 병맥주 8병을 사서

어디서 먹을까 어슬렁 어슬렁.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져 달랏 센터로 들어왔는데  사람도 없고, 현지 분들도 여기서 이것저것 드시길래

우리도 조금스럽게 한 병씩만 꺼내서 먹다 나가자!

이방인이 좀처럼 없는 곳인데 두 명이나 여기서 뭘 먹고 있으니 

모두 희한한 생물 보듯 한 눈빛이다.

토미는 서구형에 크고 진한 쌍꺼풀이 있는 눈을 가진 한국에서 별명이 '외쿡인' 이니

둥글넙적하고, 비교적 허옇고, 밋밋한 홑꺼풀인 나 덕분인 것 같다.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거나 신 짜오를 하는 것이 버릇인데

한 분도 빠짐없이 그 인사를 친절하게도 받아주시니 절대 고치고 싶지 않은 버릇이다.

오늘도 관리 할아버지, 걸음마 하던 꼬마와 엄마, 할머니, 땡땡이 우비를 입고 엄지 척! 

미소를 날리며 지나가시는 귀여운 할머니.

모두 떠날 땐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네 주시는 사람들.

이런저런 일을 겪어도 내가 베트남을 계속 오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사람들 때문이다.

풍경도 좋고, 또 모든 게 좋아서 슬금 슬금 그새 3봉지의 튀김과 맥주 8명을 먹어치워버렸다.

그리고는 야시장 계단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늘도 종일 참은 담배 냄새가 포화상태가 되어 집으로 후퇴하는 한량이다.

이방인이라 좋다.

이방인에게도 방긋 개방해 주는 이 사람들의 밝은 마음과 미소가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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