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연 Oct 08.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Vietnam-Dalat) 올라가도 올라가도




전날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도 숙취가 없다.

떠나기 전 서울 쌍문동 집에서 막판에 맥주 2병씩만 마셔도 토가 나올 만큼 숙취가 생겨서

이제 몸이 맛이 갔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생각과 마음과 환경의 영향은 이렇게나 크다.


그러나 나의 복병.

빨간 군단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저항할 도리가 없다.

그냥 견디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도 시원한 바람과 쏜살같은 구름과 가랑비가 밖으로 나오라 꼬신다.

그럼 나가야지.


수박과 망고로 해장을 하고 슬렁슬렁 샌들을 신고 나가

시장 국숫집에서 1000원짜리 비건 쌀국수와 볶음밥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아우락에 가서 퍼보짜이와 껌짜이 , 궁금했던 왕만두를 먹는다.

작년의 아우락은 조금 더 조용한 분위기였는데

올해의 아우락은 조금 더 밝은 여성분과 내가 좋아하는 nba 선수 몬테 엘리스 선수를 닮은

아니 똑같이 생긴 남자분이 있어서 더욱 자주 가게 된다.

오늘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베트남 몬테 엘리스가 있어서 눈호강을 한다.


채소가 떨어져 오가닉 마트에 들러 

채소와 과일을 사면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남겨본다.

매일 직원들이 바뀌지만

매일 친절하게 이방인을 대해주고, 반겨주는 오가닉 마트가 좋다.


가는 길이 달랏 대성당 길목이라 오늘은 대성당도 들른다.

슬렁 설렁 동네 산책인데 거창하다.

토미가 동영상을 찍는 동안 손질된 아프로 헤어 나무에 집을 지은 거미도 찍고, 

아래 보이는 동네를 찍는다.

높은 지대의 달랏은 

오르막을 올라도 오르막이 또 나오고

그 오르막에서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면

라퓨타의 어느 동네에 올라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번뜩임이 있다면 나도 이런 천상의 배경으로 빼어난 작품 하나 뽑을 수 있겠지만

평범하고, 평범함보다 한참 아래인 나는

그냥 감동하고

그냥 끄적이고

그냥 크레용으로 그릴 따름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특별하다고 생각했었고, 다르다고 생각했었던 지난 어리석은 시간들.

그리고 여전히 어리석지만 하나씩 인정하고 포기를 배우는 시간들.

아직도 욕심과 헛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나와도 친해지고, 좋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은) 초록별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