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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10.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Vietnam-Dalat) 벌써 그리운 달랏의 구름, 바람, 사람





내일은 달랏을 떠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생리로 한 번을 앓고,

너무 비건 가공식과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은 덕분인지 설사를 쫙쫙 뽑아내는 중인데

덧붙여 입술의 포진이 얼굴까지 번지고,

귀와 목 등에 처음 겪는 알레르기인지 뭔지 모르겠는 무진장 간지러운 것들이

베드 버그 물린 것마냥 괴롭힘을 더하고 있다.

나는 달랏이 좋은데 달랏은 나를 더 이상 오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건지

처음 달랏 때에도 이번 달랏 때에도 자꾸만 뭐가 나고 아프다.

여행을 다니며 아팠던 적은 달랏 두 번이 유일할 정도라

장소가 나와 맞지 않는 곳도 있나.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계속 먹어주고, 다녀주고, 바라봐 주겠다!

아침에 관장하듯 비워진 배에 사랑스러운 망고와 수박을 다시 주입시켜주고

일상이 된 손빨래 후 그리고, 끄적이기.

샐러드를 씻고, 점심을 준비.

오늘의 점심은 토미가 고른 두부로 만든 어마 무시한 비건 가공 반찬을 잔뜩 데워 먹었다.

두부만 먹어도 속이 텁텁한 나는 이것들을 집어넣으니

목구멍까지 꽉 차올라 도무지 뱃속에서 소화를 시키는 것 같지 않다.

함께 먹으려고 노력하는 토미를 위해 가공품을 자주 먹어보지만

내 속은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함께 있는 시간과 일상에 나의 불편을 조금 감내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고기를 매끼 먹고픈데 함께 하겠다고 저러고 있는 토미가 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게 누가 시켰냐...

서로 편하게 먹자 토미...

마지막 집 밥이 속 더부룩함으로 종료되었지만

다시 한번 베트남의 채식 문화에 신기함과 놀라움을 느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쨍쨍함의 기세가 비로 인해 조금 사그라들 무렵

쑤언흐엉을 보고, 빅씨 마트 광장에서 하늘을 보고

해 질 무렵엔 발길 가는대로 골목골목을 쑤시고 다니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오늘도 지금껏처럼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던 얼굴을 보여주는 하늘, 구름.

오토바이와 차를 조심해야 하는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 빠져 한참을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그 하늘 속에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은지

오늘따라 하늘과 구름 사이에 연을 날려 놓은 사람들이 많다.

모두 얼굴이 좋다.

높이 날지 않아도, 금방 떨어져도, 남들의 연보다 높아도 또는 낮아도

모두 하늘을 보며 행복해 보인다.

하늘만으로도 행복한데 그 행복한 모습들에 입이 찢어질 듯 미소가 번진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또 호수로 쏟아붓는 듯한 물이 하늘에서 쏟아지다가

다중 이처럼 다시 금세 그친다.

정말 달랏의 날씨는 재미있다.

한 달, 일 년을 살아도 매일 재미있을 것 같은 날씨다.


내일 아침에 먹을 망고와 수박, 아보카도를 고르고 무작정 시내를 걷고, 아슬아슬한 골목을 걷는다.

해가 완전히 숨어버린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 보는 오르막이 있어 오르니

여긴 또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인 것 같은 풍경이 놓여있다.

한국의 달동네 느낌인데 더 한적하고

건물들은 대만 가정집 같은 느낌으로 드문드문 지어져있다.

전선 뭉치들 끝자락에 노란빛 작은 조명이 건물들에 부딪혀

몽롱한 색감의 풍경을 그린다.

단지 누군가의 집이고, 누군가 다니는 길일뿐인데

이런 풍경은 나를 늘 잡아둔다.


어마어마하고, 유명한 특별한 풍경은 내 발길을 잡지 못해도

삶의 냄새가 나는 이 모습이 좋다.

그 속의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와 풍경이라도

오늘이 달랏에서의 마지막 밤인 나는

모든 것이 특별하고 붙잡고 싶은 풍경이다.

내일이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풍경인 것이다.

어디에서보다 아프고, 그래서 힘든 곳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또한 식상한 표현이지만

아쉽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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