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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14.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Korea-Incheon) 나에게 된장을 달라!




달랏은 떠나는 날까지도 시끌벅적하게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역시나 아침에 과일을 실컷 먹고, 

에어비앤비로 묵은 2주 동안 세입자로 있던 에릭 하우스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시 떠돌이 이삿짐을 단단히 여미고 집을 나섰다.

점심으로 싸 온 리엔호아의 반미짜이를 빅씨 마트 광장에서 먹고, 

매일 빼먹지 않고 먹던 빅씨 마트의 큼직달큼한 밤고구마도 먹고 

응옹팻 정류장에 도착할 즈음부터 폭우다.

전날 담당 아저씨께 여쭤보고, 오늘도 미리 여쭤봐서 3시 40분 버스임을 확인했는데

타는 사람은 우리뿐이고 아주아주 엄청난 폭우다.

이러다 취소되고, 버스편 취소가 아닌가?

택시비를 들여가야 하나?

가는 길에 어찌 가든 사고 나것다! 싶은데 

기사님이 올라타시고, 승객은 우리뿐이라 덩치 큰 택시가 따로 없다.

가는 길은 사파에서의 공포가 떠오를 만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강물 속을 헤엄쳐 가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싶은 빗길을 쌩쌩~

이대로가 마지막이라면 '이것도 그대로 느껴줘야지' 라는 마음과

'과연 내가 토미에게 애정 어린 표현을 아낌없이 했을까' 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정도의 아찔한 길.

무사히 도착하니 비가 그치고, 어설픈 깜언! 에도 하얀 미소로 답해 주시는 기사님 얼굴에 마음이 스르륵.

아직도 어두움으로 남아있는 호찌민을 공항 라운지 안에서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스르륵.

25~28일 즈음부터 몸이 좋지 않아 개운하지 않은 몸으로 날을 새고, 밤 비행기를 타자니

아. 나 같은 차 싫어하는 뚜벅이는 달랏도 이제 3번은 힘들지 않나 싶다.

5월 30일 인천 도착.

이제 하루를 한국에서 묵으면 31일부터는 유럽 일정이 시작된다.

설렘으로 뒤척였어야 하는 날들이 아픔으로 꼴딱. 그것도 공항과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들이라 고역이다.

정말 달랏은 나와 맞지 않나.

짝사랑을 하는 듯한 기분, 속상한 마음이 깊다.

이맘때의 한국은, 서울의 쌍문동은 숨 막힐 듯한 공기와 더위, 오존으로 기억되어

하루는 더위에 죽겠구나 싶은 각오로 도착해서 미리 무료 픽업이 되는 예약한 호텔로 연락하니

전화도 세상 친절, 큰 벤을 갖고 데리러 오신 기사님도 세상 친절.

도착하니 선선하다 못해 추운 듯한 서늘한 공기도 세상 친절.

공기, 사람 모든 것이 지나치게 친절하다.

처음 와 본 동네 운서역.

무슨 이국에 와 있는 듯 신선하면서 고향에 와 있는 듯 친근한, 그리고 푸릇푸릇이 많고

여유가 있는 동네다.

몸도 시원찮고, 정신이 몽롱함에도 계속 걷고 싶은 묘한 동네다.

이곳에서 중요한 미션이 있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이미, 예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했었지만 

마지막 짐 쑤셔 넣기에 무게로 밀린, 우리의 유기농 된장. 

그렇다. 

바로 그 된장! 을 다시 넣어 가는 것이 미션이다.

정신력이 이미 바닥.

체력은 이미 지하.

적당히 해외의 한인마트에서 GMO 된장을 먹어야 하나 정신이 흐려지지만

웬일로 이런 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토미가 깃발을 든다.

초록마을로 나서자고.

다행히 30분 거리에 있는 초록마을에서 된장을 공수하자고.

감당할 수 없는 느끼 크림 버터 취양 토미이기에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녀석.

정신과 체력을 이긴 것이 바로 오랜 입맛이었다.

현미, 된장, 청양고추, 고춧가루, 과일, 생채소만 있으면 된다고 장담했었는데

그 된장, 현미, 고춧가루가 쉽지 않다.

도망치고 싶은 한국었는데 나의 이 원초적 매움과 칼칼함, 쿰쿰함을 갈구하는 입맛은

한국에서도 지나칠 정도였으니 

그래도 같은 동양권인 베트남도 보름이 되니 힘들었는데 앞으로 유럽은 어느 정도일까 걱정되지만

유기농 된장을 품에 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너는 트렁크에서 함께 떠나는 거야. 유럽으로!

된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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