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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17.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Poland-Warsaw) 쨍한 파스텔톤 파란색





바르샤바에서의 하루 맛보기 데이와 하루의 온전한 날을 보내고 나니 

마지막 온전한 날 찬스만이 남았다.

오늘도 아침식사 바나나를 먹어치우고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니

올드타운과 연결된 골목골목을 걷자 생각했다.

폴란드에 대해서는 인사말과 물가, 숙소 근처 비건 식당  정도 밖에 조사하지 않아서,

관광지에는 관심이 없어,

근처 발길 닫는 대로 걸어 다니자 하였었는데

숙소에 크게 붙은 바르샤바 지도에 올드타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기가 구시가?

걸어가 보지 뭐.

근데 어느 방향이지?

직진만 하면 돼. 나가보자!

길눈이 어둡지만 겁 없는 우리는 그렇게 매우 선선하지만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땡볕 속을 

용감하게 뚜벅이기 시작했다.

손안의 친구 구글 지도는 우리 위치에서 구시가까지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하니 

걷다 보면 비슷한 풍경이 보이겠지!


골목을 신나게 걷다 보니 고속도로 길같이 엄청 큰 도로변이 나온다.

이쪽 맞나?

방향은 맞는데 도로변이 끝나니 올드타운은커녕 진짜 현지인들 주거지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 넓은 공원과 예쁜 집들, 둥실 가로지르는 구름! 

넋이 나가 한참을 둘러보고 나니 2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이상하다. 

지도에서 40분 거리라면 벌써 나왔어야 했는데.

지나온 길들이 즐거웠지만 정말 주택가라서 벗어나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보니

두둥.

우리는 그 3배를 걸어서 바르샤바의 끝까지 걸어왔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의 공격이 절정이라 걸어서 되돌아가는 것은 무리.

지하철을 이용하여 올드타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여기구나. 이 가까운 곳을 우리는 바르샤바를 정복할 태세로 걸었구나!

뜨겁다.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햇빛에 매우 취약하여 사실 비가 오지 않거나 일명 우중충한 낮이 아니면

낮에는 드라큘라처럼 암막 커튼을 치고 실내에 숨어 있는 것이 좋은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에코백 속에라도 숨어들어가고 싶다.

디즈니 테마파크처럼 파스텔 톤의 너무 예쁜 풍경들이 햇빛에 날려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나무 그늘 속에 숨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주위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기가, 아니 여기도 폴란드 과거, 아픔의 장소구나.

그리고 그 회복의 장소구나.

옛 거리, 옛 건물의 모습이지만 너무 티끌 없이 깨끗하고,

멋모르고 보면 마치 놀이동산의 공주 동산 그런 느낌의 아기자기 예쁜 그런 올드타운...

그 속에 흉터처럼 섞인 과거의 흔적들.

그 모든 역사와 현재의 연결고리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 느낌이 묘했다.

내가 어떻게 이 모습이 예쁘다느니, 가슴 아프다느니, 테마파크처럼 아기자기 하다느니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달리 할 말이 없어 뱉은, 나불대는 말이지만

그냥 조용히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겠다.


목이 말라 기념품 파는 곳 쪽에 위치한 곳에서 생맥주 한 잔씩 마시며(비싸서 두 잔은 먹지 못했다)

바라보고 생각에 잠기고

배가 고파 식당 앞 메뉴판을 정독하며 돌아다니니 그나마 저렴하고 비건 메뉴가 있는 식당이 있어 들어간다.

뚜벅이들이 통 크게 맥주도 한 병씩 시키고(생맥주였으면 좋으련만. 게다가 맛도 화장품 맛이었다! )

비건 버거와 만두를 시켰다.

올드타운의 후미진 곳에 있었지만 손님이 많고, 깔끔하고, 중간에 계속 맛을 체크해주는 모습이

고마움으로 남는 식당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에도 역시 키즈밀 같은 양의 식사를 먹고도 당당하게 어른값을 치르고 나온다.

작지만 계속 머물고 싶은 올드타운의 날씨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바뀌고 나서야 

다시 중앙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는 백야의 날.

계속 해가 비쳐주니 하루 시간이 48시간 이상은 되는 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이제 마지막 날이라니...!

맥주나 더 먹자!

이 기분이 사그라들고,  빨리 자서 내일 아침 출국을 준비하라는 이성이 고개를 들기 전에

마트를 털자!!

옷.

옷.

옷,

......

문 닫았다.

근처 대형 마트들, 작은 마트들 모두 문 닫았다.

일요일이었다. 오늘.

문을 연 곳은 바로 밑 편의점.

그곳에는 내가 먹을 안주가 없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는다. 

안주빨을 엄청 세우지만 지금은 맥주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지엥쿠예!! 지엥쿠예!!!

편의점 아저씨께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들어와 싸늘한 고층 건물들이 보이는, 

그러나 그마저도 너무 감사한 풍경이 보이는 작은 창가에 앉아 

바르샤바에서의 마지막 맥주를 마시며 꼭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을 남긴다.


대만이나 베트남처럼 너무 좋다, 너무 좋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사람도, 풍경도 모두 묘한 중독성, 매력이 있는 도시다.

애초에 폴란드도 그단스크, 자코파네를 포함하여 한달을 계획했지만 

폴란드가 유럽의 중국이라 불릴 만큼 대기 질의 원인 중 하나라 제외할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3박 4일간의 공기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기에

또 오고 싶은 그리운 도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어딘지 모르게 차갑지만 친해지고 싶은 바르샤바.

우리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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