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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17.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Estonia-Tallinn) 따뜻한 첫인상, 차가운 물가




2019.06.03


바르샤바에서 탈린으로 이동하는 날 아침.

첫날 버스에서의 아찔한 민폐의 기억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버스보다는 트램이 나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출근길의 트램 역시 가는 길이 험해 보여

처음으로 우버라는 것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이 돈이면!!!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짐 때문에 나보다 토미가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뚜벅이에게 큰 예산이고 우리 여행 타입에 맞지 않지만. 

혼자였다면 미련스럽게도 대중교통만 탔겠지만 짝꿍이 있기에 큰(?) 결심을 한다.

역시나 이 녀석. 차 부르자는 말에 화색이 돈다.

돈은 정말 편리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늘 편리함을 위해 써보자꾸나 토미. 

대신 맥주는 없다.

그간의 우리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이 와중에도 친절한 바르샤바 천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 중인 우리에서 도움을 자처했다)

볼트와 우버를 검색했다.

벤을 불러야 하는 짐이기에 30~40 즈워티 쯤을 생각했는데 

어라!

붐비는 시간이라며 2배 이상 금액이 오르고 공항 가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만 차라 한다.

30분을 기다리며 똥줄을 태우고 있는데 우버에서만, 62즈워티까지 오르고서야 

빈 차 한 대가 잡아졌다.

으허... 

돈 아까워 ......

그 와중에 불안하기도 하다.

택시를 절대 타고 다니지 않는 나는 이렇게 모르는 차 부르는 것도 불편하고

사건, 사고도 많으니 믿음이 가지 않는 시스템이다.


기사님이 오셨다

얼마 떴냐?

62

내가 이 앱을 끄고 갈 거야. 대신 60에 해줄게.

오케이.

돈 지불하고, 공항에 내리기까지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돈을 쓰니 몸이 편하더라는 사실을 체험한다.

사람이 지나가려고 서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쌩하니 달려가던 차도 100% 멈춰주는 바르샤바였는데

우리가 직접 탄 차는 처음으로 그 법칙을 무시했으므로 

100% 가 아님을 확인하는 체험도 한다.

무법운전사님, 짐 내려주고 가는 순간까지 몹시도 쿨한 사내였다.

자식.

사람 보이면 그대도 꼭 세워주오!


바르샤바 공항 라운지에는 다행히 아시아나 라운지와는 다르게 

오렌지, 포도, 바나나, 사과 등이 있어서 실컷 과일식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고

토미는 고삐가 풀린 듯 소세지 파티를 벌였다.

녀석. 그러게 

먹고픈 대로 먹으렴!

유럽 간의 이동은 10여 년 전 기차와 버스만 이용해 봤을 뿐인 우리다.

비행기 이동은 처음이다.

작다 작다 블로거님들의 사진을 통해 익혀왔으나 에어버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주 너무나 귀여워서 여기에 몸을 싣는 것이 우버 택시만큼 불안하다.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죄책감과 죽음을 각오하고 타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는 옆 좌석을 한자리 비워주고, 기내식을 준다.

몹시도 친절한, 

몹시 체구가 큰 승무원분들이, 

몹시 타이트한 의상으로 이동조차 몹시도 힘들어 보이는 

하늘을 나는 작은 버스에서 불편하고도 복잡한 생각으로, 아직도 성치 못한 컨디션으로 곧 착륙하게 되는 탈린.

한번 내려다보자!


와!!!!!

모든 불안이 떨쳐지는 신기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레고의 나무 블럭을 빈틈없이 꽂아놓은 것 마냥 초록의 예쁜 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는 숲이 

공항 인근의 풍경이라니.

곧 착륙한 아주 작은 공항은 달랏 공항처럼 걸어서 건물로 들어가는데

뒤돌아 본 풍경 속 구름이 촤르륵 카펫을 펼쳐 맞이해준다.

바르샤바 공항버스에서의 민폐의 기억 때문에 

탈린의 트램이나 버스도 영 그런 예상이 드는 모양새 면 덜덜덜 손을 떨면서 택시를 타야겠다 각오하고

토미가 유심을 구매하는 동안 트램, 버스 이정표를 따라나서봤다.

와......

이렇게 대중교통을 타는 곳과 가깝고, 편리하게끔 되어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짧은 길을 한번 쭉 걷고, 짧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바로 평지. 

그곳에 티켓 창구 등이 있고,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앞에 친절한 트램이 정차한다.

게다가 문안에서 노선도와 차편을 확인할 수 있는, 이방인도 목적지만 알면 알아보기 편한 모니터도 있다.

게다가 공항인데 사람도 시골 동네 정류장보다 더 없어 편안하다.

마침 우리가 가야 하는 Veerenni 정류장으로 가는 4번 트램이 정차하고, 

내려서 담배를 피우는 기사님께 확답을 받고 나서야 

올라가서 토미를 데리고와 트램을 탈 수 있었다.


바르샤바의 트램과 버스처럼 과격하지 않고, 작고 예쁜 길들을 총총총 지나고 나니 벌써 도착한 목적지.

그러나 큰일이  있었으니 유심의 에러로 데이터가 없다는 것.

유심 사용이 되지 않아 트램을 타기 전 

우리가 한 달 동안 빌려 살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것과

내려서도 연락이 되지 않고, 지도가 되지 않는다는 점.

내가 전 날 보낸 메시지에서의 연락 예정 시간이 지나자 문자가 왔고

돈이 아까워도 다행이다 싶어 답장하고, 

다행히 프린트된 주소 이름이 있어서 대로변 한가운데서도 길을 물어 낑낑거리며 동네도 진입할 수 있었고

여기서 이제 어떻게 찾냐 싶을 때

다행히 숙소를 찾아봤을 때 기억하는 외관 모습이 멀리서 눈에 들어와서

한 달 탈린 집과 호스트를 영접할 수 있었다.


외관을 보고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낡은 3층 아파트 단지.

호스트와 얘기하고, 설명 듣고, 빠빠이 하고서야 들어온 창문 풍경에  함박웃음.

앞은 휑한 도로 뷰인데 이 센스 있는 아파트의 창문은, 아파트의 뒷마당은

어릴 적 자랐던 평택 우리 집의 마당을 보는 듯한

땅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가 있는 마당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일정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데

공기 측정을 해보니 실제 상황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수치.

한국에서 10년 동안 1~2 번 있었던 수치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거야? 창문 열고 살 수 있는 거야?

이동할 어느 나라보다 알아본 것이 없이 핀란드 가기 전 들르는 곳 정도로 정한 에스토니아 탈린.

첫 만남부터 예감이 좋다.


일단 필요한 것과 음식을 사러 오늘은 마트나 슬렁 다녀오자 토미.

가까운 곳에 RIMI 라는 마트가 있다.

우리는 욕실 실내화를 사고, 과일 등을 사야겠다 생각했는데 

없다.

실내화, 실외화 자체가 없다.

다른 마트를 검색해서 이동하자.

없다.

희한하게 파티 용품과 스타킹이 한 줄 가득 디피되었는데도!

그렇게 5군데의 마트를 이동했지만 

스타킹은 식품보다 더 많이 팔고 있지만

욕실화는 없다.

아니, 폴란드에서도 없더니

이쪽 사람들은 스타킹은 신어도 욕실화는 신지 않는다는 건가?

스타킹은 신어도 욕실은 맨발로 저벅거린다는 건가?

스타킹이 실내화인가!!!!!!

아직도 몸이 낫지 않는 나는 밥 먹고, 짐 풀고, 씻고, 쉬고 싶은데 

그렇게 욕실화를 찾다가

아니, 그 대용품이라도 찾다가 2~3시간이 지나버렸다.

간신히 SOLARIS 라는 쇼핑몰에서, 그것도 마트가 아닌 패션용품 점에서 쪼리를 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배가 고프다.

오늘 외식은 계획에 없는 지출인데 먹고 가서 자자.고 결심했건만

헙.

이런.

비싸다.

핀란드에서 3달을 머물고 싶었지만 물가가 두려워 근처 나라를 찾던 중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섬에 꽂혀 그곳에서 한 달 묵자 싶다가 그곳 집값이 핀란드 값이라서 포기하고 

그나마 저렴한, 한 달 숙박 할인을 받아서 구한, 그래서 한 달 살게 된 탈린이다.

여러 글에서 유로화를 쓴 후 물가가 점점 오르고 있다는 말은 익히 봐왔지만

비싸다.

한국에서도 우리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데 (나가면 식물식으로 먹을 음식이 없기도 하고)

한국 가격대인 것 같다.

폴란드 버거와 만두에 지친 우리는 쌀이 먹고 싶어서 ,

인도 식당의 입구 메뉴판에서 비건 메뉴를 발견하여 들어가 

덜덜거리는 손으로 메뉴를 고르고 주문한다.

가장 저렴한 병아리콩카레와 채소볶음이 각 8~9유로, 밥은 3유로.

날리는 밥과 또 어린이 세트 같은 장난감 사이즈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웃음이 예쁜 직원이 달라 주셨고

먹으면서도 덜덜덜, 구시렁구시렁

왜 이러게 비싸고,

왜 이렇게 양이 적어.

서울이네 서울이야.

그래도 서울은 김치랑 단무지는 주잖아.

그래도 탈린은 이렇게 아무 쇼핑몰에서도 비건식을 팔잖아.

그래도 서울에서는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배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주린 배 잡고 집 와서 먹잖아.

그래도 탈린은 이렇게 돈을 내면 비건식을 주잖아.

그래도 맛은 좋다.

그래도 매우 친절해서 고맙다.

아. 그 친절함 속에 서비스비도 10%나 붙었구나.

이제 탈린에서 외식할 일은 없겠다.

밥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지만 돈을 털린 기분, 

밥은 먹었지만 여전히 주린 배.

이게 서양식의 식사라는 거라는 것을 다시금 배 주리게 느낀다.


마트 안에 오가닉 마트가 따로 있어서 내일 먹을 샐러드 채소와 과일, 쌀 등을 사서 돌아온다.

오가닉 마트의 물가 또한 한국과 동일하다.

잘해줬다가, 막 대했다가 이랬다저랬다 반복하는 친구를 만난 듯한 탈린의 첫날.

자야 하는데 폴란드보다 심한 백야로 쨍쨍함까지 주는 탈린.

그래도 잘 지내보자.

사이좋게.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이자.

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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