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 일지)Vietnam-Dalat

아저씨들의 성지, 우리들의 아지트

by 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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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7일도 채 안 된 일정에서는 하루만 더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몸부림쳤었는데

그만큼이 넘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오늘 아침 남은 날을 계산해 보니

얼마 남지 않았네?

으악!! 시간이 아까워!!

이러고 있는 욕심쟁이를 발견한다.


베트남이 아시아권에서 가장 맥주 소비가 많은 나라라 했던가?

하노이에서, 냐짱에서는 분명 그랬다.

하노이는 노점 식당에서도 맥주가 빠지지 않을 만큼

아침부터도 맥주를 먹을 수 있을 만큼

맥주의 천국이었다.

냐짱은 아주 후미진,

외국인이 없는 동네를 힘들게 찾아가야 비아 허이를 만날 수 있지만

쉽게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원고소한 아주 큰 사이공 오리지널 병맥주가 있어 맥주쟁이에게 충분한 도시였다.


작년 달랏에 왔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캔맥주를 좋아하지 않고, 병맥주와 생맥주가 좋은 맥주쟁이들에는

베트남이 이럴 수가!

여기가 우리가 알던 베트남이 맞는가! 싶을 만큼

마트에도 수입 병맥주와 캔맥주만 덜렁

식당에도 맥주가 없는 집이 많고, 있다면 캔맥주...

이럴 리가 없다며 동네방네 병맥주 파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슈퍼마켓에서는 구할 수 없었고,

결국 비비큐 전문 식당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사이공 스페셜을 공심채와 훌렁 먹고 나왔었다.

우리가 중심을 다 못 돌아봐서 그런 걸 거야.

아무리 그래도 베트남인데...!


아니다.

달랏이 그런 것이었다.

정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어슬렁 가려보면 달랏의 그런 문화를 알 수 있다.

하노이에서는 누군가 모여있는 곳엔 어김없이 커피와 맥주가 있기 마련인데

달랏은 누군가 뭉텅이로 모여있고, 둠칫둠칫 클럽 음악이 나오는 곳이라도

반짱느엉과 쓰어두어난, 빵, 옥수수, 고구마, 그리고 아주 약간의 칵테일이 있을 뿐이다!

줄 담배를 피우는 잔뜩 멋부린 젊은이들도 우르르 모여 두유를 마신다!


그래도 이번엔 사이공 스페셜이라도 병맥주를 파는

(사실 간이 술집으로 이용되고 있는 구멍가게) 곳을 찾아내서

병맥주를 공수할 수 있다.

생맥주를 파는 곳은 사파처럼 죄다 서양 타입의 시끄럽고 삐까번쩍 그런 곳으로

베트남의 후미진 곳, 베트남 비아 허이를 찾는 우리에겐

서울에서 맥주 먹는 것처럼 매력이 없는 곳이라 가까워도 찾지 않았다.


그렇다면 할 수 없다.

비장의 아지트로 갈 수밖에.

작년에 무작정 걸어 다니다가 달랏 대학교 인근에서 울퉁불퉁 길을 따라 외곽으로 걷던 때에

정말 맥주 한 잔이 딱! 너무나 그리운 그런 때에

채식 식당도 보이지 않고, 맥주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 그런 때에

번개처럼 눈에 들어온 생맥주 그림과 biahoi 하는 글씨!!!

띠리리리리리리리리~

후진하여 조심스럽게 들어선 그곳은

정말로 생맥주를 파는 곳이었다.

그것도 무려 흑맥주도 있고, 타워 생맥주까지 있었다.

채식 식당이 아니고 베트남의 일반적인 식당이라 당연히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도 있겠다 싶어

손짓 발짓 여쭤보니

다행히 채소와 두부가 단독 메뉴로 있어 고삐 풀린 듯 먹다 온 그런 곳이다.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니 역시나 낮부터도 많은 현지인들이 단체로 음식과 맥주를 즐기고 있다.

베트남의 여느 식당처럼 금연 시당이 아니기에

최대한 바깥 자리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공심채, 두부를 시키고,

육식을 하면서 내내 내가 먹는 곳에서만 식사를 한 토미는

육식 안주를 시킨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은 거의 절대 불가능하다.

집에서 차려먹지 않는다면.

이런 다양성의 자유가 있는 곳이라

우리는 대만과 베트남에서라면 함께 맥주와 음식을 둘 모두 즐길 수가 있다.

둘이 이렇게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는 식당은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복권 파는 사람, 음식 파는 사람,

이번에는 심지어 마술쇼를 보여주고 과자를 파는 사람도 들어왔다.

신기한 건 식당 측에서 어떤 제제도 가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그냥 활짝 열려있다.

길에서, 공원에서 마이크로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베트남 사람들.

밤에는 젊은이 무리들이 가게 앞에 주저앉아 음악을 크게 틀고,

마이크를 들고 요상한 목소리로 깍깍 노래를 불러대는데도

손님이나 사장이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괴로운 건 우리뿐인 듯하다.


우리의 시간은 환한 낮부터 시작해서 어둠이 깔리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작년보다 메뉴가 대폭 축소되어 선택의 폭이 좁기는 했지만

두부를 또 시키고, 다른 채소볶음을 또 시킬 수 있음이 행복이다.

앞, 옆, 뒤 손님들이 몇 번이고 바뀌었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하늘색의 바뀜을 보여 매순간을 즐긴다.

그러다 테이블이 붙은 앞자리에 청년 3인이 앉는다.

제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앉지 않기를 바랐건만

3인이 모두 담배를 피우다 들어와서 끄고 앉는다.

하. 이제 우리가 갈 시간이 되었구나.

눈인사를 했다.

우리를 배려해서인지 한 명만 손을 숨겨 담배를 피우고, 고맙게도 나머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들의 안주가 나왔다.

처음 보는 안주가 나와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웃긴 가 보다.

이때부터 간간이 대화가 오갔다.

한 번도 써먹지 못했던 베트남어도 써먹어보고,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지만

현지인과 눈빛, 손짓, 웃음이 오가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복권(?)처럼 보이는 것을 어디서나 많이 팔던데

여기도 복권상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것 같다.

청년들에게도 대여섯 번 권하지만 절대 사지 않더니 갑자기 구입한다.

저 복권은 좋은 건가 봐 토미.

그런가 보네? 이제 사네?

그런데 갑자기 그중 두 장을 우리에게 건넨다.

응? 우리 가지라고?

그렇단다.

난 아무것도 주지 못했는데 우리에게 복권 한 장씩과, 환한 웃음을 날려주더니

그렇게 청년들은 자리를 떠났다.

어디서나 친절을 많이 경험하지만

복권은 처음이다.

우리는 이걸 어떻게 써먹는지 모른다는 것도 알 텐데

그렇게라도 이방인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행운을 선물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아무것도 주지 못했는데...

그들이 가고도 한참을 그 여운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고

영업시간이 거의 끝날 즈음에서야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돌아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사는 동안 복권을 한 번도 사보지 않았지만

복권을 사는 마음이라면 몽땅 사들여 내 당첨률이 높기를 바라지 않을까?

낯선 이방인에게 행운을 빌어준 계산 없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또 삶을 가르쳐준다.

청년이 우리에게 준 것은 복권 한 장의 행운이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아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몽땅 내어준 것이리라.

뚜벅거리는 이방인 여행자의 발걸음 발걸음마다 그 행운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주지 못했지만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내 모든 생각, 마음, 표현, 행동

삶의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그렇게 우리가 매 순간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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