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일지)Poland-Warsaw

차가움과 뜨끈함의 공존, 바르샤바

by 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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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5월 31일 오전 10시 즈음의 비행기에 탑승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5월 31일 오후 2시 즈음 도착.

하늘 위에서 10시간을 날았을 뿐인데 내가 살던 곳과 다른 시간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몸이 환장하겠는 상태가 이어지고2~3일은 날을 세다시피 하니

도착해도 몸땡이가 부담스러워 쉬고만 싶을 뿐

별다른 감흥이 없다.

짐을 찾고, 유심을 사고, 바르샤바 중앙역 인근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175번 공항버스를 타기로 한다.

뭔 티켓 자판기에 줄이 그리 긴지. 자판기는 왜 하나뿐인 건지!

유일한 동양인이라 그런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양 모든 이국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몸은 힘들고, 짐은 많고, 줄도 길고 이래서 얼마나 민폐를 끼치며 버스를 타는지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힘들다.

마음을 동동 구르며 한참을 기다리니 역시나 모두 175번만 기다렸는지!

일제히 한 버스에만 올라타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그 속에 함께 타보려는데 틈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자 자기 짐까지 들고 있던 친절한 분이

내 짐을 번쩍 들어서 올려주신다.

타면 안심이겠거니 싶은 버스는 중앙에 아코디언 같은 허리가 휘면서 코너를 돌면

뒷덩이는 심하게 요동치는 버스였다.

이 버스는 왜 이렇게 허리가 길고 난리야!!

배낭을 메고, 양손에 트렁크를 두 개씩 든 나와 토미는 서로를 보살필 겨를도 없이 중심 잡기에 여념이 없는데

이게 보통이 아니다.

마침 짐을 올려준 천사님이 내 뒤에,

앞에 키는 불쑥 큰데 영락없는 소녀들,

그것도 아주 작은 것에도 꺄르르 웃는 해바라기 같은 소녀 두 명이 내 중심을 잡아주고,

급정거에 이제 진짜 바닥으로 슬라이딩하면서 여러 사람 치겠구나! 싶었던 찰나에도

천사님이 받쳐주신 덕분에 살아서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이 밀린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고마운 두 명의 소녀와 한 명의 청년!)


내려서도 에스컬레이터도 없이 계단과 돌길을 마지막 힘을 다해 질주하고 나서야 쓰러질 것 같은,

그렇지만 털썩 주저앉을 수 있는 3박 4일간 폴란드 집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폴란드 스톱오버 여행을 계획했을 때

폴란드는 길에서나 공원에서나 다 음주가 불법인데 비스와 강이라고 한강 같은 곳에서는 암묵적으로

모두 맥주를 마신대!

첫날은 비스와 강 보면서 맥주 마시자!!

이랬었는데

비스와 강은 커녕 당장 배나 채우고 씻고, 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한 우리는

다행히 가까운, 그것도 비건 정크푸드가 줄줄이 진열된 마트에서

다음날 먹을 과일과, 맥주, 안줏거리를 사서 간신히 먹고 잠들었다.


6월 1일이 되는 날의 새벽.

잉? 벌써 한낮이야?

일어나 보니 새벽 2시.

그렇다.

말로만 듣고, 다큐에서나 보면 백야.

그것도 잠시 놀랄 뿐 도로 누웠는데 빛 하나에 민감하여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는

새벽 2시부터 시작되어 4시가 되자 쨍쨍해지는 이국의 신비한 현상으로 인해

또 잠을 자지 못했다.

젠장.


잠을 못 자니 몸이 회복이 안되는데 일어났으니 제일 먼저 하고픈 건 아침을 먹고

재래시장의 아침을 보고 싶다.

햇빛 취약자에게는 너무 힘든 쨍쨍함.

이른 아침에 오후 2~3시의 해를 받으며 시장에 도착하니

쨍함이 있어 반짝반짝 예쁜, 바르샤바 사람들의 식탁이 펼쳐져 있다.

어디를 가든, 하물며 같은 서울에서 옆 동네로 이사를 가도 가장 먼저 하고,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시 시장 구경이다.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시장 구경을 마치고 중앙역 쪽으로 돌아와 큰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한다.

유럽 쪽에서는 독일이 채식 문화가 가장 발달한 줄 알았는데 폴란드도 대단하다.

가공, 정크푸드를 좋아하지 않기에 한국에서도 일부러 사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여기는 요거트, 소세지, 치즈, 팔라펠 등이 한국 가격의 7분의 1 정도 수준으로 그 다양성이 상당하다.

여기가 이런데 독일은 어떻단 말일지?

내가 현재 먹고, 쓰고 있었던 유기농, 비건, 리사이클 생활용품들이 거의 90% 이상 독일 제품이기 때문에

참으로 궁금해진다.

과일, 채소 가격은 예상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며칠 먹을 식량들을 조달해서 집에 쟁여놓고

근처 비건 식당을 찾았다.


아. 그런데 가는 길이 혼란스럽다.

인도도 널찍하고, 공기도 서울보다 좋고, 사람이 지나가면 쌩쌩 달리던 타도 바로 무조건적으로 멈춰주고,

깨끗하고 예쁜 이 도시가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

길거리 음식도 없고, 모두 숨바꼭질하듯 가게들도 숨어있고, 표정들도 생기가 없어뵌다.

비건 식당들의 음식들도 죄다 이 사람들 주식인 햄버거, 팔라펠, 만두, 피자가 전부이니

바퀴가 수도 없이 내 발 사이를 오가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타이베이와 하노이, 달랏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도무지 식욕이 생기지 않는 메뉴들이지만 밥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역시나 버거와 팔라펠 등이 전부인 식당.

버거와 팔라펠 세트를 주문한 우리 (한국만큼 비싸서 당황하여 손 떨린 우리) .

이걸로 배를 채우라고 주는 건지 놀라울 뿐인 어린이 버거 세트 같은 양.

물을 토미 발에 쏟고도

무표정의 얼굴로

쏴리

이 한마디로 끝낸 옆 아낙네.

어린이 세트를 먹고, 우리 기준의 큰돈을 지불하고 나온 우리.

기분이 영 개운치 않은데 애고 어른이고 그놈의 쌩쌩이들을 왜 죄다 타고 다니는지

인간이 가진 두 발로 걷는 자가 우리뿐인 거리.

술맛은 좋던데 술이나 잔뜩 사서 먹고 잠이나 자고 싶어지지만

토미가 비스와 강을 가자 한다.

그래. 가자.

슈퍼에 들러 맥주랑 안주를 사 가자.


걸어서 걸어서 비스와 강을 향했다. 주변 건물과 풍경들이 모두 차갑게 다가온다.

정말 비스와 강에서만 노상 맥주가 허용이라 그런지

비스와 강 앞 마트는 술과 과자를 사려는 젊은이들로 북적북적.

우리도 질세라 두 손 잔뜩 맥주와 비건 소세지, 햄, 치즈를 에라이! 라는 마음으로 구입해 본다.

드디어 비스와 강.

모든 폴란드의 젊은이들이 모두 모이고, 모두 취한 것 같다.

한강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노는 것과는 또 아주 다른 모습이다.

죄다 음악을 크게 틀고, 춤추고, 지나치게 소리 지르고, 담배도 지나치게 피고, 술병은 깨져서 발에 치이고...

앞에는 호텔 가운 같은 것을 입고, 바에서 한 잔씩 하고, 클럽이 있고, 그쪽에서는 강가 쪽을 언짢게 바라보고.

저렇게나 많이? 다 싶은 경찰차와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고.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토미를 끌고 아주 구석으로 가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유쾌하고, 상쾌하지 못한 기분을 재빨리 털어버리고 싶어 강을 보고 하늘을 보니

와!

마음이 드디어 스르륵,

지금 여기에 몸과 마음이 온전히 함께 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디 외진 곳의 강처럼 폭은 크지 않은데 그래서 좋고,

한강처럼 맞은편이 삐까번쩍 도로와 건물들이 보이지 않고 온통 낮은 키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서 좋고,

새하얀 구름은 백야의 파란 하늘 위로 빠르게 움직여서 좋다.

나름 외진 곳에 자리 잡아 나름 조용하고 나름 덜 담배 향이 나고

무엇보다 맛난 맥주를 토미와 강을 보며 마실 수 있어서.

드디어 폴란드에 온 이후 활짝 웃는 서로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맥주 덕분에 유로 화장실비를 맥주 값 만큼 지출해야했지만.


나룻배가 강을 유유히 지나간다.

그 뒤로 둠칫둠칫 요란한 음악으로 치장하고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춤을 추고 있는

요상한 큰 배가 지나간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배 타고 즐긴다는 선상파티 뭐 그런 것 같다.

앞에는 강에서 큰 배를 타고 저렇게 놀고,

뒤에는 여유롭게 라운지에서 음주를 즐기고, 클럽에 입장하고

이 모습들이 중간인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미친 듯 자유를 발산하려 하고,

노상방뇨를 하고,

소리 지르고,

마시고 피는 모습과 상반되어

강가에 자리 잡은 많은 젊음들이 안쓰러웠다.

어디서나 이런 상반되는 모습들은 마음의 무거움으로 자리 잡는다.


10시가 되어도 조금 짙은 남색이 되었을 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짙은 남색과 조명의 반짝임이 아름답다.

살짝 취하면 세상 보는 시선도 살짝 부드러워진다.

그 밤이 되어서야 보이는 모든 풍경들.

아름다운 폴란드 바르샤뱌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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