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 일지) Estonia-Tallinn

공병 팔고, 곰돌이 보고

by 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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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 숨고 싶은 쨍쨍한 얼마간의 날들이 지나고

요즘은 비가 오고, 쌀쌀하고, 어두침침하고, 우중충하고, 천둥번개까지 치고 그치는

내가 사랑하는 날들의 반복이다.

날씨는 정말 큰 행복하다.

오늘도 스토커마냥 냥돌이를 지켜보며 혼자 인사를 건내고 하루를 시작한다.


병, 페트, 캔 음료를 구입할 때 보증금이 붙는다.

그간 모아두었더니 부피가 꽤 되어

오늘은 물어물어 알아두었던 공병수거함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본다.

공병 값을 그리 받았으면 마트마다 있던가

적어도 동네에 하나는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싶은데

동선에 있는 마트들에 물어물어

(언제나 친절하고, 천천히, 또박또박 영어로 인내심있게 설명해주는 우리 동네 모든 마트 아주머니들. 아이따!)

찾아낸 곳은 비루에 있는 카오바마야.

세상에.

공병값은 그리 마트마다 받고, 회수는 탈린 내에서 여기뿐이라고!

딸그락땡그랑쨍그랑 동양인 남녀가 양손 가득 공병 비닐을 들고 다니니

동양인, 이방인에도 별 관심이 없는 탈린 사람들의 시건이 잔뜩 집중된다.

나도 여태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저씨 한 분이 공병을 들고 가는 것 밖에 보지 못했다.

마트에 도착하여 찾으니 주차장에 있단다.

뭣이?

아하.

도착해 보니 서울처럼 걷는 사람보다 차가 미치도록 많은 탈린이니

모두 차에 싣고 공병을 넣고 가나보다. 싶다.

한달동안 비 맞은 강아지 냄새가 나는 회수 창고에서 공병을 넣으니 똑똑한 회수기 녀석이

돌돌 돌리며 병따개도 따고 척척 집어넣고 영수증을 뽑아준다.

잘 있어!

다음에 또 올게!


손에서도 역시 비에 젖은 강아지 냄새가 나서 손을 닦고 싶은데

야뱍한 화장실은 손을 닦을 장소도 따로 없으면서 그런 큰 몰에서도 화장실은 모두 유료다.

됐다.

손 껍질이 까질 때까지 손을 닦는 나이지만

좀만 더 참고 가서 시장 가서 닦으련다!

매정한 것들...

작은방광과 손빡빡주의자에게 한국이 그리운 것 중 하나는 바로 개방된 화장실이다.

태어난 곳이 그리운 게 화장실이라니.

참.

나도...


과일을 사러 Balti jaama Trug 로 출발.

더럽게 비싼 체리와 딸기를 1킬로씩 사고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2층의 빈티지마켓을 들러보기로 한다.

와!

넓다.

넓고, 깨끗하다.

아날로그, 빈티지, 버려진 것 마니아는 눈이 돌아간다.

한국에서와는 확실히 톤이 다름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도 좋아하던 곳곳의 빈티지 마켓들과 전체적인 톤이 다른 것이 재미있다.

아주 작은 브로치부터, 정말 큰 콘트라베이스까지.

그 한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고 큰 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그 톤을 만든 것이다.

내가 쌓아온 마음과 생각, 행동, 표현들이 나의 얼굴과 표정과 느낌으로 색을 만든 것처럼.


짐만 더 없었다면!

빤쮸 한 장을 더 빼면 저걸 가져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며 눈이 빠지게 구경하고 있는데

충격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서울에서 얼마 전까지도 듣다가 결국은 처분하고 왔던 그 cd 플레이가

겜보이와 함께 골동품으로 모셔서 있다!

누가 흘리고 간 걸 거야...

혼자 궁시렁 중얼거리자 토미가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니야.

골동품 된지 꽤 됐지.

후후


아주아주 큰 가게들을 거치고 거치면서 유독 계속 밟히는 녀석이 있었다.

이 곰돌이 뭔가 표정도 웃기고 나름 귀여운데 뭐지?

봤더니 모스크바 올림픽 마스코트라 한다.

몰랐다.

88 올림픽 호돌이만 알았지.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미샤라 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어두운 시대에 태어난 마스코트 곰돌이 미샤는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도 남아돌아서 골동품 가게에도 새것 같은 녀석들이 그렘린처럼 넘쳐나는 것 같다.

호돌이 아이템들은 정말 보기 어렵던데...

자꾸 발길을 잡는 녀석을 일단 두고 내려온다.

다시 얼굴을 보러 오기로 하고.


큰일이다.

저녁시간 전까지만 보고 들어가서 만들어 먹기로 했는데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배가 미치도록 고파졌다.

나 혼자라면 바나나 한 다발 사서 먹으면 뚝딱 해결인데

육식을 하며 내내 인내하는 토미에게 오늘은 바깥 밥을 먹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쩌지?

다 비싸고, 양도 넘 적은데 어쩌지?

서울에서와 같이 똑같은 고민을 하는 상황이 너무 싫다.

고민하고 둘러보고 고민하고 둘러보고.

한가지 아주 긍정정인 점이 있다면

시장 푸드코트임에도 무조건적으로 비건이나 채식 메뉴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더럽게 비싸고, 양도 적지만.

버거는 정말 먹고 싶지 않아. 팔라펠도. 비건 양식 따윈 정말 미샤나 주라지.

밥과 카레를 먹으려 하니

이런.

남은 건 모두 고기가 든 카레밖에 없다.

그럼 선택지는 버거와 팔라펠뿐인가?

아니다. 일식인지 중식인지 중에 비빔면 같은 것이 있다.

이거다! 싶어 주문해보자 했건만

한 젓가락의 양. 굳이 비교하자면 일식집에서 돈까스나 초밥 등을 시키면 나오는 작은 우동의 양?

아...

결국 버거를 선택했다.

가장 저렴한 베지버거를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려 친절한 호명과 미소와 함께 나온 우리의 버거는

육식을 하던 시절,

햄버거를 먹던 시절에 먹어 본 롯데리아 햄버거 중 가장 작은 사이즈나 키즈밀 사이즈의 버거다.

베지라서 그런가 봤더니 고기 버거를 먹는 사람들의 크기도 모두 동일하다.

저래서 사람들이 맨날 케이크 먹고, 아이스크림을 달고 살아가는 구나. 이해가 된다.

아끼고 아껴서 세입에 나눠먹으니 끝났다.

그리고 12유로를 지출했다.

허허허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외식이 될 것 같구나 토미.


화장실도, 공병도, 물가도, 심지어 음식의 양도!!!

너무하다 싶은 오후의 몇 시간이다.

오늘은 종합 편 같다.

에스토니아 탈린 생활 중 가장 좋지 않았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누군가 물으면 0.1초 만에 나물 나물 떠들 수 있을 것 같은 점.

비싼 한 끼는 참을 수 있지만 비싼 키즈밀 한 끼는 정말 먹깨비에겐 힘들다.

수박 한 통과 파인애플과 사과와 오렌지로 배 빵빵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기에

정말 외출이 두려워질 정도라고 느껴진다.

탈린이 그래도 물가 저렴하다며 여기저기 외식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건 그 사람들 주머니 사정.

나와는 관계없다.

단지 나에겐 비싸다. 마트 물가도 비싸서 호박 하나에도 손들 덜덜.

한살림에서 이 크기면 세개는 샀을 가격인데 이러면서!

식물식을 하면서도 맥주 습관은 놓고 싶지 않았던 나.

그런데 서울에서의 마지막 1년은 맥주도 자연스럽게 양을 많이 줄일 만큼, 한 달에 2번 정도 먹을 만큼

안정된 식습관으로 자리 잡혀서

맥주쟁이인 내가 정말 놀라고, 주변이 모두 놀랄 정도였는데

여기선 그나마 내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건 맥주뿐이야!라면서

매일 그나마 저렴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뒤돌아서 깜짝 놀라는 요즘이다.


오늘도 내 친구 사쿠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다시 마음을 진정하고 백야의 하늘과 나무를 바라본다.


비싼 물가에 많이 맘껏 먹지도, 맘껏 이동하지도 못해서 다시 서울처럼 웅크려드는 것 같지만

이런 날,

흔들리는 나무와 바람이 손을 내민다.

금전적으로 남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더라도

자유로운 네 발 걸음을 옮기고 절대 어디에도 묶지 말라고.

돈이라는 사소한 돌부리에 넘어지지 말라고.

폴란드에서부터 서울에서 떠날 때 예상한 것보다 예산이 초과되고 있고, 남은 날들은 아직 많기에

자꾸 거북이가 돼버리는 나에게

자연은 이렇게 말을 건네고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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