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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26.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Estonia-Tallinn) 탈린 이웃사촌




2019.06.15

쨍쨍과 칙칙이 반복되는 요즘의 탈린.

그리고 살면서 처음 보는 민들레씨가 미친 듯이 날리는 날들의 탈린.

눈이 하늘에서 땅으로 흩날리며 떨어지듯이  땅에서 하늘 위로 솟구쳐 마구 날리는 민들레씨는

정말 눈이 오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만큼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심하게 많다.

탈린 매연과 담배연기만 빼면 그래도 공기가 좋아서 안심하는 날들이었는데

비염쟁이가 마스크를 살짝 챙겨야 하는 정도다.

살면서 이런 민들레홀씨 대이동을 본 적이 없다.

큼직한 이곳의 사람들처럼 민들레꽃도 크다.

언제까지 날리려나... 

108배를 하고, 과일을 먹고, 점심으로 된장국 넘치게 끓여 비우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 한편을 본다.

해가 지기 전에는 나갈 수 없지만

오늘은 궁뎅이가 무거워 집이 콕 박혀있고 싶다.

첫 날 혹시나 싶어 비상식품들을 살펴보다가 비건 두부 커리가 3유로도 안 해서

평소 사지 않는 병 요리를 구입했는데 요거 맛이 꽤 좋다.

집에서 커리가루등을 배합해 커리를 자주 만들어 먹었던 우리가 먹기엔

첨가물 맛에 혀가 말리는 느낌이 들지만 맛이 좋다.

조금 귀찮은 날, 밥을 많이 싸서 요 놈 하나 사들고 산책 가도 좋을 것이다.

마당만 봐도 심심하지 않다.

오늘도 냥돌이의 일상을 대놓고 훔쳐보며 혼자 히죽거리고

매일 참새마냥 마당에 놀러와 냥돌이가 남긴 뼈다귀를 뜯어 먹는 갈매기를 보며 히죽거리고

금세 얼굴이 바뀌는 하늘색과 구름을 보며 히죽거리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 너 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테크노를 추는 나뭇잎들을 보며 히죽거리고, 

먹고, 그리고, 쓰고, 보고 하다보면

어두워지지 않아 시간개념이 없어졌지만

문득 시계를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났다.

하얀 구름, 하얀 갈매기, 하얀 반갑지 않은 민들레 홀씨.

녹색 나뭇잎, 녹색 잔디, 녹색 풀.

시멘트로 덮이지 않은 흙빛 그대로의 푸석한 흙이 매운 마당.

차분히 팔랑거리는 이국 이웃 할매의 빨래

그리고 모두를 신나게 댄스댄스 하게 만드는 살랑바람 DJ

모두 나 좀 봐달라고 손짓한다.

나도 모두에게  손 흔든다.

고마워.

매일, 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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