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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Nov 10. 2019

(아직은) 초록별 일지

(Finland - Tampere) 처음 만난 수오미




                 

 2019.07.01

오늘의 일정.

탈린 집에서 탈린 페리 터미널 - 탈린에서 헬싱키행 페리-

헬싱키 하버에서 캄피까지 이동-캄피버스터미널에서 탐페레까지 이동-탐페레 터미널에서 집까지 이동.

에케로라인 6시 페리를 탈 예정.

새벽 1시 반 기상, 정리를 하고, 체크아웃 하고 집을 나서기 시작한 건 4시.

탑승은 1시간쯤 전부터라 하고, 30분까지 탑승 완료하면 되지만

캐리어가 2개씩이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기 때문이다.

토미를 생각하면 택시를 불러야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걸을 수 밖에.

경로를 검색하면 도보로 55분 걸리는 거리.

시간이 촉박하거나 늦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늘 몸이 갖은 고생해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몸이 좀 더 힘을 내줘야 한다.

출발하고 5분이 지나자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멈출 수가 없다.

난 왜 이렇게 고집스럽고, 미련 맞을까 싶지만 

새벽부터 옷이 다 젖도록 걸어서 50분 만에 하버에 도착했다.

5시가 다 되어가자 주변에 택시가 보이고,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보이니 기분이 묘했지만.

몸이 찢어질 것 같아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다.

늙어 죽을 때까지.

비행기, 페리까지 타는데 택시까지 타는 건 허락이 되지 않는다.

다만 차 타는 걸 좋아하는 토미와의 합의 선에서 늘 조정을 봐야 한다.

처음 타보는 대형 페리.

예매할 때만 해도 여기저기 구경 다니면 재밌겠다 싶었는데

낑낑대며 올라간, 가장 가보고 싶었던 꼭대기 층 바다가 보이는 곳은 흡연구역...

젠장.

풍경 좋은 곳은 자동차와 담배가 선점한다.

그래도 피우다가 많이 내려가겠지. 싶어 내내 기다려보는데

그냥 줄담배들이 뻥 뚫린 바다에 담배 냄새와 재를 떨어보내느라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마.

내려가서 bar로 운영되는 곳에 앉아 아침으로 싸 온 바나나를 먹고, 자고, 

얼룩지고 작은 창문 사이로 바다와 파도를 바라본다.

생각보다 너무 금방, 피곤에 절어 끝나 버린 페리 탑승.

페리에서 내리고 하버 터미널 문을 나서기 무섭게 줄담배의 향연.

맑은 공기를 맡을, 역겨운 냄새를 맡지 않을 나의 자유를

니놈들의 그 '자유' 로 빼앗지 마라, 이눔들아.

문을 열고 바로 앞이 트램 정류장이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티켓 발매기는 카드와 동전만 가능하다.

동전은 모자라고, 카드는 출금 때에만 쓰는 것이 우리 여행의 원칙인데!

게다가 트램 안에서 티켓을 구입할 수 없단다.

그렇게 트램 하나를 보내고, 어쩔 수 없이 카드로 티켓을 뽑아 탑승.

도착한 캄피의 키오스크에서 토미가 유심을 사는 걸 기다리며 짐을 지키는데

탈린과 폴란드, 베트남, 대만은 흡연이 양호하구나. 싶다.

사방을 에워싸고 내 옆에서만 20명이 넘게 담배를 피워대는데 죽겠다.

이렇게나 열렬한 관심과 사랑을 받다니.

지하로 내려가 버스를 찾고 안내 데스크에서 확인도 받고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데 

버스 타는 것이 힘든 나는, 더군다나 3시간 정도의 탑승이라

역시 불안한 화장실.

핀란드는 더 비쌀 텐데!

옴마...

1유로다.

남녀 공용 터미네이터 캡슐인데 1유로.

쉬. 한 번에 바나나 한 다발이 덜렁.

좀 전 위에서 화장실 표시를 보아서 혹시나 하고 가보니 더 좋은 화장실이 무료! 

혹시라도 이 일지를 누군가 보신다면 꼭 버스 타기 전 그 무료 화장실을 이용했으면 싶다!

화장실이 있는 버스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무료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가고서야

안심하고 버스에 탑승한다.

왠지 돈 번 기분이다.

2유로 어치 뭘 사 먹고 싶은 심정이다.

미리 예매한 덕에 옴니버스 대신 익스프레스 버스를 저렴한 값에 예매하고 

좌석도 추가로 주문할 수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앞자리에 종이까지 얹어놓았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사파로 가는 버스보다는 훨씬 좁은 버스였지만

기사님도 매우 친절하시고, 졸려 죽겠음에도 가는 길이 궁금해서 

뚫어져라 뚫린 시야를 내내 보고 왔더니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힘겹지 않게 무사히 지나갔다.

탐페레 버스터미널 도착.

첫인상은 한국의 아주 작은 도시에 있을 법한 터미널의 규모.

오히려 친근하다.

차만 있음 됐지 건물이 클 필요가 없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터미널만 보면 꼭 TV에서 보던 멕시코 인근 마을이 떠오른다.

바로 뒤돌아서 탐페레 한 달 살 집으로 갈 버스를 타고(무려 1인 3.5유로 ㅜㅜ )

동네에 도착하니 탈린보다 건물은 많고, 나무는 별로 없는데

사람 사는 곳인가 싶을 만큼 사람이 없다.

가끔 지나가는 인간들은 죄다 담배 인간이고...

집주인 ville 는 사진발이 잘 받는 젊은이다.

북쪽 사람들은 다리가 내 키만 하다 더니 키도 나랑 같아 친근하고, 말고 많고, 매우 적극적인 젊은이다.

그리고 이런 집을 본 적 없을 만큼 어찌나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 놓았는지.

다소 힘들게 익혀 간 나의 옹알이 같은 핀란드어에도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고

외출한 손으로 빨래했다던 이불과 수건을 연신 만지작거리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ville.

맥주도 반 짝을 선물로 주고 떠난 ville.

탈린에서도 그러더니 우리가 맥주 복이 있나 보다.

새벽 1시 반에 일어나서 시작된 강행군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과정이 대체로 즐거웠지만 이동이 짧은 여행에서보다 순간을 자주 놓치고 

목적을 위해 흘려보낸 듯한 시간이 많은 날이다.

밥 먹자.

탈린에서 고기반찬을 2번 밖에 먹지 않은 토미를 위해 탈린에서 사 온

비건 라면과 콩 단백 조리 제품을 몽땅 넣어 맵게 끓여 내고

젊은이 ville 가 주고 간 맥주를 먹는다.

탈린 작은 숲 같은 풍경은 아니지만

작은 베란다의 작은 의자와 테이블, 큼직한 유리창으로 그대로 쏟아지는 파란 하늘 마당이 있다.

집 복도 있다.

이제서야 긴장이 풀리고 눈꺼풀이 미친 듯이 닫혔다가

알콜이 들어가면 힘이 솟는 한멍멍은

그 비싼 맥주를 또 사 와서 토미를 재우고도

노래 듣고, 하늘 보고, 끄적거리며 다음 날을 맞이하련다.

오늘도 만난 곳곳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풍경.

모두 끼이또스!

잘 지내보자. 이름도 귀여운 수오미의 탐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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