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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Nov 23. 2019

(핀란드 일지) Finland - Tampere

그냥, 마냥, 단지






2019.07.09


하루는 비, 하루는 잠깐의 햇빛, 하루는 비 없이 회색빛.

7월이라는 달이 섞인 계절이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보통 질색들 하는 장마, 비, 우중충한 날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날씨이다.

달랏도 정말 비가 많이 오고, 춥지만 습도가 높고 마스크를 써야 했던 날씨와 공기.

비가 오는 날은 참 좋고, 서늘했지만 쨍쨍함과 건조함이 냐짱 같던 탈린.

지금 탐페레는 해도 잿빛 구름 뒤에서 쉬고 있고

선선하다 못해 추워서 손톱이 시퍼렇게 되는 날씨이다.

탐페레에 와서는 그림을 거의 그리지 못했다.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아 그림으로, 글로, 연장질로 위안을 삼던 날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그냥, 단지 , 마냥 가만히 있어도 행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오는 날 추리닝에 바람막이를 걸치고 비를 맞으며 

네모지고, 우중충한 건물들 사이의 넓은 녹지와 공원과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여기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아직 밖에서 음식 한 번 사 먹어 본 적 없고

매일 똑같은 단순한 식물식 음식을 차려 먹고

언제나와 같이 어디 특별히 다녀본 곳 없지만

단지 있는 그대로 이곳에서. 온전히 행복하다는 느낌이 충만하다.

다만.

한국에 있는, 나의 마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매일 더 생각난다.

공기와 더위와 오존. 

그런 것들로부터 나만 도망쳐 나온 것 같아 자꾸 미어지는 한구석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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