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25분의 차가운 기억
아침 햇살이
커튼을 밀어내듯 방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아~오늘은 왜 이렇게 개운하지~’
느릿하게 눈을 떴다.
평화롭고 고요한 아침이었다.
그런데,
시계는 이미 7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5분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다시 말해, 오전 7시 25분은
내가 지금 막 일어날 시간이 아니라
이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심장이 쿵.
식은땀이 쫙.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세수만 간신히 하고,
교복만 걸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숨은 가빠오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그보다 더 힘든 건.
마음의 초조함.
어제도 10분 늦어서
“다시는 안 늦을게.”
하고 미경이와 손가락 걸고 약속했었다.
가까스로 7시 40분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미경이는 벤치에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늦어서 정말 미안해”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미경이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말없이 무표정으로 버스 오는 쪽만 바라보았다.
그 장면은 흡사
무대 위 냉담한 여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용서도, 변명도, 농담도
어느 것 하나 허락되지 않는
차가운 공기가 우리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무거운 침묵이
소리보다 더 날카롭게 마음을 찔렀다.
평소라면 내가 꾼 이상한 꿈 얘기,
어젯밤 본 드라마 결말 예측으로
시끌벅적했을 시간인데,
이날은
그 어떤 말도, 웃음도
버스 정류장에 머물지 않았다.
버스는 왔지만,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탈 수가 없었다.
참으로 타이밍이 안 맞는 날이었다.
우리는 결국 8시에 버스를 탔다.
학교에 도착해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갑자기 미경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오늘 지각한 거, 걔 때문이야. 평소보다 50분이나 늦었어.”
그 순간, 나는 실내화도 못 신고 얼어붙었다.
15분 늦었을 뿐인데, 미경이의 계산으로는 50분이 되어 있었다.
수업 시간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미경이는 나를 전혀 보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놀았다.
그 모습이 얄미웠고,
난 너무 외로웠다.
‘내일 버스 정류장에서 절대 먼저 말을 안 걸 거야.’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내가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 이 사소한 틈이 자라서
진짜로 멀어질까 봐 두려웠다.
그날은 설상가상으로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수학 점수는 ‘양’.
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그 한 글자,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머리가 멍했고,
잔소리할 엄마가 떠올랐다.
학교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은 흐려지더니 곧 비가 내렸다.
내 마음도 비처럼 축축해졌다.
오늘따라 혼자
집으로 가는 길이 유독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역시나 엄마에게 꾸중과 잔소리를 들었다.
수학 점수 ‘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오늘 하루, 마음속에 쌓인 속상함을 꺼내놓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한 글자, 한 문장 써 내려가며
비로소 내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친구와 깨진 우정은
수학 점수 '양'보다 훨씬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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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온도는
하루아침에 얼어붙을 수도 있고,
한 마디 말로 다시 따뜻해질 수도 있다.
우정은 늘 성적보다 어렵고,
때로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과제다.
나는 배웠다.
점수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마음의 틈은 그냥 두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미안해’라는 말을 조금 더 먼저 꺼내도 좋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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