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은 없고, 매운탕만 있었다.

한 중학생의 입학식 생존기

by 황지연

1992년 3월 2일.

중학교 입학식날.


교복은 어색하고, 운동장은 춥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왜 그리 긴지 모르겠다.

나는 가장 뒤쪽에 서서 운동장의 찬 공기를 조용히 삼키고 있었다.

그냥 얼른 입학식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빨리


그러나 입학식이 한창일 무렵, 뒤에서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르며 들려왔다.


“우리 딸이 두 번째로 뚱뚱하네.”


그 순간, 나의 몸은 굳었고,

귀는 빨개졌고,

눈꺼풀만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엄마는 웃음을 터뜨리며 “어디?”라고 물었고,

아빠는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나처럼 건강하고 단발머리 여학생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진심으로 그녀에게 고마웠다.

왜냐면, 아빠는

그 아이 덕분에 내가 두 번째다”라는

믿기 힘든 위로(?)를 해주셨으니까.


나는 뚱뚱한 순위 2위로 중학교 입학을 했다.

1위는 삼각김밥 단발머리 소녀, 고맙다 친구야.


당황스럽던 입학식이 끝나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오늘은 자장면이다.

입학식에는 역시 자장면이지!’


하지만 현실은,


“매운탕 먹으러 가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매운탕이요?

지금 이 순간, 칼칼하고 뜨거운 국물이 아니라

쫄깃한 자장 면발과 달콤한 탕수육을 원한다고요!'


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입 밖으론 “네-”라고 대답했다.

그게 바로 착한 딸의 미덕이니까.


결국 나는 매운탕 앞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먹으면서 눈물 아닌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내가 오늘 어디에 입학한 걸까.

중학교인가, 현실인가.”


그렇게 자장면 없는 입학식은 끝이 났고,

나는 진짜 중학생이 되었다.

몸은 아주 조금 어른이 되었고,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중학교 입학식도, 인생도

늘 내가 원하는 자장면 대신

뜻밖의 매운탕을 내밀곤 한다.


하지만 추억은,

그때 먹은 메뉴와 더불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가족들과

웃픈 순간들로 남는다.


그러니까,

오늘 자장면 못 먹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내일은 분명

곱빼기와 더불어 탕수육까지 먹을 날이 올 테니까.


#중학생일기

#입학식

#사춘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