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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Jan 30. 2022

그 빵집 우미당

시인 심재휘 /  김사인

  나는 왜 어느덧 파리바게트의 푸른 문을 열고 있는가, 봄날의 유리문이여 그러면 언제나 삐이걱 하며 대답하는 슬픈 이름이여, 도넛 위에 쏟아지는 초콜릿 시럽처럼 막 익은 달콤한 저녁이 내 얼굴에 온통 묻어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달지가 않구나. 


  그러니까 그 옛날 강릉 우미당을 나와 곧장 파리바게트로 걸어왔던 것은 아닌데, 젊어질 수도 없고 늙을 수도 없는 나이 마흔 살, 단팥빵을 고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이제는 그 빵집 우미당,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아침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은 이미 이별한 것, 오늘이 나에게 파리바게트 푸른 문을 열어 보이네, 바게트를 고르는 손이 바게트네, 그러면 식탁에서는 오직 마른 바게트, 하지만 씹을수록 입 안에 고이는, 그래도 씹다보면 봄날 저녁 속의 언뜻언뜻 서러움 같은, 그 빵집 우미당, 누구에게나 하나씩 불에 덴 자국 같은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아침의 문'이던, '삐이걱 하며' 열리던 빵집 하나씩이 누구의 추억엔들 없으랴, 그러나 세상의 모든 빵집은 다 '빠리바게트'가 되었고, 우리도 이제 '단팥빵을 고르기엔 너무 늦은 나이', '바게트를 고르는 손이 바게트' 같다.

  노출의 과잉이나 불균형에 떨어지는 법 없이 추억을 연금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글감과 언어를 만져나가는 심재휘 시인의 감각은 어떠한 경우에도 새되거나 강퍅한 법이 없다. 언제나 부드럽고 우아하다. 그의 이 '우미(優美)'한 손길에 이끌려 우리는 어느덧 저마다의 슬프고도 감미로운 추억 속으로 인도된다. 

  어쩌겠는가. 마른 바게트를 꾹꾹 씹는 수밖에, '씹다보면 봄날 저녁 속의 언뜻언뜻 서러움같'이, '불에 덴 자국같'이 흘러간 시간들이 입안에 고이기도 하리니. (시인 김사인)


     필사9일 / 20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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