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자전거 여행 1
봄의 무덤들은 평화롭다. 푸른 보리밭 속의 무덤들은 죽음이 갖는 단절과 차단의 슬픔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 무덤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죽음은 바람이 불고 날이 저물고 달이 뜨고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편안한 순리로 느껴진다.
30년쯤 전에 아버지를 묻을 때, 내 어린 여동생들은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나는 내 동생들한테 울지 말라고 소리 지르면서 울었다. 지금은 한식 때 아버지 묘지에 성묘 가도 울지 않는다. 내 동생들도 이제는 안 운다. 죽음이, 날이 저물면 밤이 되는 것 같은 순리임을 아는 데도 세월이 필요한 모양이다.
필사19/ 202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