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에세이; 4일차(61~83P)

by 지영

“박사야! 나는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이방인이다. 내 아 버지는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었어. 근데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높은 자리에서 늘 미끄러지셨지. 내 오빠도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어. 근데 공군 시험을 보면 늘 낙방이 돼버리는 거야!

항의하면 너희는 진짜 중국인이 아니고 조선 사람이잖아 하고 차별을 당했어. 한국에서는 또 우리 보고 중국인이래. 이래저래 우리는 이방인이야.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고 살아야 하는 거야!"

그날 자신을 이방인이라 말하던 언니 목소리가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선 허수아비처럼 고독하게 느껴졌다.

(중략)

"언니는 후회 같은 거 없어?"

"있었지! 근데 지금은 없어. 일이 벌어졌는데 후회는 해서 뭐 하겠네. 모두 내가 선택한 건데. 난 고맙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눈 먼 마누라 안 버리고 살아주는 남편도,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다 고맙다."



< 단상 >

비정기적인 인사이동으로 전국을 옮겨 다녀야 하는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다.

누군가 먼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도, 조용히 틈을 찾아 들어가야 하고, 그곳에서 다시 적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본성보다는 사회적 기술이 먼저 발달했다.

“너, A형이지? 그것도 극소심 A형?”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무례하다고 느끼면서도, 그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판단했다.


“B형이시죠?”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도 잘 모르는데,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나를 B형이라고 단정 짓는다. 아마도 낯선 환경에서도 밝고 단단하게 보였기 때문이리라, 좋게 해석하기로 했다.


이방인으로 살게 만든 남편의 직업을 원망했으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은, 가끔 견디기 어렵게 마음 시끄러웠다. 그러나 이젠 후회보다는, 이 삶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살핀다. 그 지역, 그 자리에서 견뎌낼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을 찾는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다시 서울, 대전, 그리고 지금은 또 대구.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내 님은 어디에 있나...”

나는 님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늘 이방인이지만, 이제야, 좀 지혜롭게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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