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에세이; 5일차 (p99~115)

by 지영

토요일 아침, 은사님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산사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다 내 생각이 나셨다고 했다. 3월에 힘든 일이 있었는데 수필 공모전에 내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기뻤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은사님이 아직 슬픔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위로를 하고 싶었다. 문자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내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죽기를 원했던 열두 살의 나를 꺼내 보였다. 당시 나는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형편이 좀 펴지나 했더니 이런 일이 있구나!”

엄마의 한스러운 독백이 무거운 죄책감이 되어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결국 엄마의 희망이었던 암소 두 마리가 내 병원비로 사라졌다. 은사님께는 어린 시절 큰 수술을 두 차례 했는데 엄마가 수술비 때문에 힘겨워해서 이대로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방식은 내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함께 아파하는 것이었다. (p100)




<단상>

핸드폰 문자에 눈이 동그래졌다. 작은 눈동자가 놀라 동그랗게 차올랐다. 얼른 오른손을 들어 눈을 꾸욱 눌러 한번 비빈 뒤, 다시 들여다보았다.

나중에 알았다. 뉴스에도 나오고 난리가 났던가 보다. 중학교 친구들끼리 물놀이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밤 11시40분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아직은, 아니 이제는, 눈물을 흘릴 정신도 없는 부부와 큰 아들은 짐을 챙기고 있었다. 공기와 뒤섞인 슬픔이 무거웠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방식도 그랬다. 내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함께 아파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들을 감히 위로할 수가 없는데, 말도 안되는 어떤 소리들을 했는지, 섣부른 위로가 혹시라도 상처를 준 것은 아니었나 싶어 편지를 썼다. 이 여름에 어울리지도 않게 선선한 바람이 분다고, 아침부터 그냥 생각이 났다고, 경험 없이 하는 말이라, 다 죄송하고 조심스럽지만, 두 분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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