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에세이 : 5일 차 (p77~86)
‘바다에서 바다까지’
마음을 다쳤을 때는 더 간절하게 바다를 찾는다.
속을 드러내기 힘들어하는 내가 그 앞에서는 잘도 털어 놓는다. 마다스 왕의 이발사가 숲으로 가서 "임금님 귀 는 당나귀 귀"를 속삭였다면, 나는 바다로 가서 그렇게 한다. 바다는 나의 비밀을 듣고도, 고해사제처럼 아무 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다에 는 모래보다 소금보다, 비밀의 밀도가 높을 것이다.(78p)
‘아무것도 몰라요’
달을 올려다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꼭 같지는 않더라도 오늘 밤 내가 보는 이 달을 당신이 안 보고 있다고는 못하겠지
사랑하는 마음을 지어내본 적이 있다. 거짓부렁으로 사랑하는 척해보았다는 것인데, 그게 그럴 만한 이 유가 있어서였다.(83p)
<단상>
‘바다는 모래보다 소금보다, 비밀의 밀도가 높다.’
삶이 버거워질 때 사람들은 바다로 향한다. 넓고 깊은 그 바다에 무거운 나를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별말을 하지 않아도 바다는 사람을 안다.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봐도 바다는 듣는다. 가만히 서성여도 바다는 그 사람을 안아준다.
바다는 사람들의 눈물을 다 받아내느라 짠 것일지도 모른다.
부산에 살 때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버릇처럼 광안리로 갔다.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의 눈물과 서러움, 힘듦과 슬픔을 다 끌어안은 바다를, 나는 어쩌면 그 바다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