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김영하 / 여행의 이유 ; 4일 차 (~p82)

by 지영

『여행의 이유』<4일 차 ~82>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버린 과거와 아직 오직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p.82)



<단상>

여행은 현재를 담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 모른다. 여행은 나의 감각과 시간, 그리고 존재를 비로소 ‘현재’에 머물게 한다. 물론 과거와 미래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여행지의 풍경 앞에 서면 그 무게는 의외로 쉽게 내려진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1인칭 주인공이 아니다. 3인칭 관찰자가 되어 풍경과 냄새, 소리를 낯설고도 신비롭게 받아들인다. 그것들은 즉각적으로 몰려든다. 머뭇거릴 틈도 없이 두 팔 벌려 맞이할 수밖에 없다.


지워버리고 싶은 후회와 민망함.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힘이겠지.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나를, 여행이 설득하고 있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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