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산문 / 3일 차 (~
<필사>
사실 대부분의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뇨나 고혈압은 정해진 수치에 이르러야 병으로 진단받게 되는데 아직 정상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치가 점점 오르는 중이라면 그는 병의 전 단계에 있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미병(未病)이라 부른다.
이 미병의 시기는 치료가 수월한 반면 스스로 잘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나는 이것이 꼭 우리가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보다는 사소한 마음의 결이 어긋난 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고 만다.
증상과 통증은 이제 미병이 끝나고 우리 몸에 병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장기와 기관들은 통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위통이 시작된 후에야 위가 여기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픈 곳은 허리인데 손발이 먼저 저려올 때 온몸의 신경이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서도 다시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앓는다. 특히 서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의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될 만큼 커다란 마음의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p45~47)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p51)
<단상>
'고독을 즐기다', '고독을 씹다'와 같은 표현에서 고독은 자발적인 선택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외로움을 타다', '외로움을 떨치다'는 외로움이 비자발적인 결핍임을 보여준다. 결국 고독은 스스로 통제 가능한 긍정적 경험으로 남지만, 외로움은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이기에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게 된다.
우리는 외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과 잘 지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삶과 나의 본질이 자꾸만 어긋나니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어느 순간 외로움의 늪에 깊이 잠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마음을 그냥 보낸다.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조차 그저 나이 탓으로 돌리며 뒷전으로 미룬다.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과 잘 지내고 있나요?'
약도 잘 챙기지 않고, 충분한 휴식 시간조차 내어주지 않으니, 내가 나 자신과 잘 지낼 리 만무하다. 그러나 최소한 나의 양심 앞에 덜 부끄럽고자 마음만은 따뜻하게 가지려 노력한다. 필사나 운동 시간을 내는 것, 이것도 바로 최근 내가 나 자신과 잘 지내보려는 구체적인 노력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