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산문 / 4일 차 ; ( ~p76)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4일 차 ~76p>
<필사>
여전히 나에게 '믿음'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 중에 가장 추상적이고 아득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 추상과 아득함은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상대가 배신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보다는, '믿음'이라는 나의 감정이 언젠가는 닳고 지쳐 색이 바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서 온다.
그동안 나는 참 많은 말들과 사람들과 시간들을 믿었다.
믿음이 깨지지 않은 말도 있었고 믿음이 더 두터워진 사람도 여럿이었으며 생각처럼 다가온 시간들도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경우에서 내 믿음은 해지고 무너지고 깨어졌다.
딛는 마음, 마음마다 폐허 같았다.(p.65)
<단상>
믿을 수 없지만 믿는 것 외에는, 또 다른 것은 허용되지 않는 상황. 그래서 믿음에는 큰 용기,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의심이 솟구치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야 희망과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참 슬프다. 아프고, 이 아픔을 견뎌내야 한다.
내가 만났던 아이, 가족까지도 믿지 못할 상황이 확인되면, 그 상처를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 가족에 대한 믿음을 환상으로만 붙잡은 채 혼자 앓이를 하고 있었다.
믿음이 더 이상 막연한 것이 아니려면, 주먹 불끈 쥐고, 일단 용기를 내야 한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 의심을 뛰어넘어야 한다. 겁이 나지만 그래야 할 것이다.
믿음에 대해 강하게 글을 쓰는 나의 슬픔을, 이 글을 쓰면서 알아차렸다. 개인적인 일은 아니지만, 나 개인을 넘어선 어떤 범위에서 나는 현재 믿음을 필요로 하는데, 그 슬픔이 이 짧은 글에 묻어난다. 이 글을 쓰면서 어쩜 나는 불확실하지만 용기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