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 2일 차 ( ~ 39p)

by 지영

<필사>

나는 폐가가 을씨년스럽거나 흉물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곳에서 불을 켜고 밥을 짓고 사랑을 하고 병을 않기도 하며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보냈다는 것.

폐가는 자신과 함께 살던 사람의 시간을 풍장시키듯 서서히 기운다. 깨진 유리창과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바람을 마주들이기도하며.p25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으로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26)




<단상>

폐가라고 하면 귀신만 우글우글하려니, 무서웠는데, 그곳에서 불을 지펴 밥을 하고 마음을 나누던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잘난’여자로서 호령하며 자칫 교만하기도 했던 분을 30년이 지나 만나게 되었다. 자존심처럼 반듯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은 그대로였지만, 겸손인지 비굴인지 모를 늙은 웃음은 서글프고 허무했다. 폐가 이야기에서 그분이 겹쳐 떠오른다. 깨진 유리창과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바람이 들이치듯, 굽어진 허리와 어눌해진 몸짓 사이로 들이치는 슬픔이라니...


딸은 손편지를 받으면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가 편지를 써주지 않을까봐, 생일이 다가오면 미리 편지를 요구한다.


나는 사랑을 내려놓고 사는 걸까, 간단한 카톡이나 문자로 대신해버리고, 편지를 쓰지 않으니 말이다. 사랑은 나의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라는 책의 구절처럼, 시간을 내어 편지를 쓸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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