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산문 / 1일 차 ; ~p21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1일 차 ~21p>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p.11)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것이며 또한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p.19)
<단상>
마지막 통화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여느 때처럼 통화의 끝자락에 '고맙다', 그 한마디는 결국 내게 유언이 되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지셨고, 내가 아버지께 들은 마지막 말이 되었다. 그저 나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을 뿐인데도, 아버지는 내게 자주 고맙다고 하셨다. 그 세 글자는 가슴에 깊이 새겨져, 나의 삶을 단정하게 옷깃 여미게 하는 소중한 말이 되었다.
대학생 때다. 자정 넘어 들어오는 나의 밤길을 걱정하여 마중 나오셨던 아버지에게 투덜거렸다. 왜 늦었는지 묻거나 잔소리조차 하지 않으시니,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가 싶어 좀 심통이 났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무색해진 나는 말없이 아버지 뒤를 따라 올라갔다.
부모나 중요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들, 특히 자주 또는 충격적으로 들었던 말은 한 사람의 심리적 구조와 성격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일부로 만들거나, 그 말을 닮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게 가시처럼 남아 계속 찌르는 그 한마디는, 상대는 정말 무심히,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평생 아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