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일지라도

작가 박완서 / 마지막

by 지영

<필사>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p.231




<단상>

청소를 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꼭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 서랍을 열면 늘 그렇듯 어수선한 것들이 눈에 띈다.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버릴 건 버리고 먼지도 닦아 낸다. 옷장 앞에 서서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옷을 다시 개켜 넣는다. 누가 보면 멀리 떠날 사람 같겠지만, 고작 하루 이틀이어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여행길에 카레를 잔뜩 끓여놓고 간다는데, 나는 청소를 한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 누군가 내 집에 들어온다면, 살아온 내 모습이 너무 너저분하게 드러날까 부끄럽다. 흉이라도 잡히면 어쩌나, 그런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행가방 싸는 일만큼은 매번 서툴다.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꼭 빠진 게 있다. 속옷이든, 화장품이든, 늘 뭔가 하나씩 없다. 결국 편의점이나 상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집 떠나 자는 일은 원래부터 내게 끔찍한 일인데, 그 때문인지 가방을 싸는 일은 매우 귀찮고 서툴다.

요즘은 딸이 붙어서 챙겨준다. 내가 하나씩 빼먹을까봐 목록을 불러주고, 내용물을 확인한다.

"내가 엄마 같아."

나는 미안한 얼굴로 웃으며 딸이 챙겨준 가방을 조심스레 닫는다.

문을 나서며 다시 돌아본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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